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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추천 애니 영화 : 고질라] 문명의 끝은 결국 멸망으로 이끌었다

문화 & 예술 이야기/인생 영화 소개

by Aaron martion lucas 2019. 11. 2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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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할 수 있는 비와 눈, 그 날의 온도, 태풍 따위가 주는 재해의 아픔은 현 인류의 역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예상할 수 있는 재해는 곧 대비할 수는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우리에게 고통은 줄 수 있으되 공포를 심을 순 없고, 절망을 줄 수는 있으되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여력을 남겨 놓는다. 재해를 대비할 수 있는 우리만의 예지력. 과학이 있기 때문에 인류는 재해가 두렵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과학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지켜줄 것이며 더 나은 삶을 약속해줄 것이고, 우리의 후손에게는 더 크고 위대한 세상을 안겨줄 테니까. 오만하다 할지라도 인류에게는 그만한 자신감이 있다. 과학은 그 자신감에 힘을 실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나타나며 이 믿음과 자신감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발전을 거듭할수록 공포와 절망을 얕잡아 보기까지 했던 인류는 하루아침에 등장한 거대한 재해에 자신들이 믿던 과학이라는 신(神) 무력함과 무쓸모 깨닫는다. 인류의 최대 무기라 자신하던 핵조차 "그것"에게는 무용지물이었고, 그것이 휘두르는 한 번의 손짓에 도시가 불타고 한 번의 입김에 나라가 괴멸했다. 재해의 실체화. 그것 "고질라"의 출현은 삽시간에 인류에게 최대의 공포와 절망을 안겨주었다.

넷플릭스(NETFLEX) 오리지널 시리즈 중 하나로, 총 세 편으로 제작·방영한 <고질라>의 첫 번째 이야기는 고질라의 무력에 의해 무력하게 당하는 인류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무엇도 통하지 않는 완전무결의 존재 앞에 허망하게 도망쳐야 했던 인류는 마지막 보루인 우주로의 도피를 택하면서 지구를 버리고, 우주의 표류자가 되는 것으로 고질라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몇십 년에 불과한 시간을 우주에서 떠돈 인류가 지구에 다시 돌아왔을 땐 이미 수만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생태계는 몰라볼 만큼 변했고, 자신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는 원시 부족이 작은 규모로 연명하고 있었으며, 여전히 고질라는 최고 포식자의 자리를 유지한 채 모든 생명체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구로 돌아온 인류가 이런 현실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이는 이미 예상했던 모습. 인류는 다시 한번 고질라와의 전쟁을 위해서, 지구의 탈환을 위해서 돌아온 만큼 지체 없이 인류는 또 한 번 고질라와의 싸움을 위해 만전을 기한다.

고질라 시리즈 중 1부와 2부는 격화되어가는 고질라와 인류의 싸움을 다룬다.

반면, 3부는 고질라와 인류의 전쟁이 아닌 고질라와 제3의 존재의 싸움을 다룸과 동시에 인류의 존폐에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1부와 2부가 싸움이라는 시각적 볼거리를 통한 오락적 요소가 강했다면, 3부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정하게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을 던지며 관객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게 만드는 것을 택했다.

고질라는 고도로 발전하던 인류의 문명이 잉태한 괴물이다.

그런데 만약,

인류의 문명이 고질라는 재앙을 잉태한 것이 예정되어 있던 수순이라면?

우리가 고질라라는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 문명을 발전시켰던 것이라면?

고질라 1,2,3부에는 '기도라'라 불리는 고질라의 숙적을 다른 차원에서 소환해낼 만큼 엄청난 과학기술을 가진 종족이 등장한다. 그들은 아주 소수만 생존한 멸종된 종족으로, 그들의 멸망이 사실은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최후였다는 진실이 3부의 후반부에 가서야 밝혀지는데, 현실에 존재하는 미래학자였던 아서 클라크의 말인 "고도로 발전한 과학은 마법과 같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들은 말했다.

과거 우리 종족은 고도의 문명을 구축하면서, 예견된 우주의 멸망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을 계산하기에 이르렀지. 그리고 우주와 우리에게 주어진 끝을 알게 되었을 때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생을 끝내, 인간의 정신을 넘어서는 하나의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 영광스러운 멸망을 맞이하기로 했다. 그 방법으로 고도의 기술을 이용해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기도라'를 현 차원에 강림시키는 것이었고, 우리는 예정대로 기도라에 의해 영관스러운 멸망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사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리 외에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다른 생명에게도 영광스러운 멸망을 선사해야만 했지. 그래서 우리 종족 중 소수만이 신관으로써 남아 우주에 남아 기도라를 전도하기로 했다.

나는 영화 속에서 말하는 '예견된 최후'에서 생각의 걸음을 한참 동안 멈췄다. 그리고 우리의 문명은 과연 몇 번째 문명이었을까 라는 물음과 함께, 유한한 생을 사는 우리에게 있어 영화에서 말하는 최후를 마냥 우습게 넘길 수 없음을 눈치채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과연 지금까지 이어온 인류의 문명이 개수를 따질 만큼 몇 개씩 존재했는지, 아니면 현 문명이 최초인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또 우리 외에 우주에는 몇 개의 문명이 존재하고, 과연 그 문명은 첫 번째 시작이었는지 아니면 죽은 문명을 거름 삼아 그 위에 다시 자란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고, 죽은 문명들은 몇 개나 되는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다만,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한 항해를 시작하는 운명에 놓인 유한한 생명체 임은 확실하다. 모든 우주만물이 결국 하나의 원자로 이루어진 만큼, 모든 존재는 결국 최후를 맞이할 운명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어쩌면 영화에서 말한 것처럼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 최후를 잉태한다는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문명은 발전할수록 우리를 좀먹고 있으니 말이다. 환경오염, 살아갈 땅과 물 부족, 서서히 고갈되어가는 자원. 그럼에도 끝없이 서로 뺏고 뺏기지 않기 위한 싸움의 연속.

어쩌면 이 모든 불행 자체가 고질라일지도...

발전할수록 부족해지는 것들. 문명이 발전할수록 점점 병들고 약해지는 우리의 몸.

발전할수록 빼앗으려는 욕심과 그로 인한 살육.

우리의 문명은 이미 고질라를 잉태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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