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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명작 영화 : 월-E] 천운이 닿지 못한 다른 세상의 월-E를 위해서

문화 & 예술 이야기/인생 영화 소개

by Aaron martion lucas 2019. 12. 1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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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어디서 피어나는 걸까. 어디선가 날아온 홀씨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몸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무언갈 양분으로 삼았다. 그리고는 감정이란 종으로 자신을 확립하더니 기쁨과 슬픔 같은 꽃말이 되어 우리 안에 꽃밭을 이루었다. 나는 감정의 발단이 궁금했다. 어떠한 계기로 감정이 세상에 등장한 것일까. 그 등장에 반색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 덕에 우리는 세상을 수천수만의 색으로 물들일 수 있었고, 갖가지 향기로 나를 그녀에게, 그녀를 나에게 이염시켜 세상을 풍족케 하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거룩한 발전을 가능케 한 수많은 것들 중 밑바닥에는 우리만의 전유물인 감정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감정은 우리에게 특별하고 당연히 이것이 우리 외의 다른 존재에게 발현되면,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만의 감정이 다른 존재에게도 발현된다면, 우리의 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 마음 어딘가에서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작은 로봇에게 발현된 감정을 보았을 때, 그 감정으로 순수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이 같은 불안감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 나아가 감정의 발단을 찾아내어 그 로봇에게 핀 감정의 싹을 잘라내고 싶어졌다. 그렇지 않으면 그 로봇은 너무도 외로울 테니까. 감정의 발단이 궁금했던 이유는, 계기를 알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을 막을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외롭고 그리울 월-E를 위해

영화<-E>의 주인공 월-E는 인류가 떠나고 쓰레기만 남은 지구의 마지막 남은 로봇이다. -E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지구의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인류가 만든 청소 로봇으로,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는 단 하나의 프로그래밍에 의해 기능이 다할 때까지 움직여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중 월-E는 모든 동료 로봇들이 기능을 다해 동작을 멈춘 뒤에도 마지막까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생존자였다. 그런데 어떻게 월-E만이 제 기능을 유지한 채 생존할 수 있었을까? 짐작하건대 그에게 발현된 감정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존 끝에 우연히 발현된 것일 수도 있지만, 감정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한 월-E가 끝없이 자신을 수리하며 인류가 지구에 있었던 과거의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며 기뻐하고, 외로워하고 그리워하는 것으로 친구를 기다리는 마음을 동력으로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으니, 감정이 그를 생존 시켰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쓰레기 속에서 제 마음에 드는 걸 조금씩 모으는 취미를 갖고 있었고, 작은 바퀴 벌레의 등장에도 기뻐하던 월-E. 큰 눈과 함께 언어 기능이 따로 없어 기계음과 몸 동작으로 소통하던 그는 끝없는 외로움을 갖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었고, 작은 대화라도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의 초반 부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이브'라 불리는 하얀 로봇의 등장을 신기해하면서도 기뻐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목적에 의해 지구에 도착한 이브는 목적이 달성된 직후 대기 모드에 돌입하며 기능을 정지하고 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월-E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공허를 느끼게 된다.

다행히 극은 이후에 좋은 결말로 나아가 종국에는 인간이 지구로 돌아오고, -E와 이브가 손을 잡는 것으로 마무리되기에 공허는 짧은 시간에 채워질 수 있었지만, 그런 천운에 닿지 못했을 때의 월-E를 상상하면 마음이 아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는 분명, 인간으로서 월-E에 대한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인간에 의해 창조되어 맹목적으로 명령만을 따를 수밖에 없는 날 동안 지구는 파국에 치닫고 세상은 쓰레기로 가득해졌으며, 결국 홀로 남겨지다 못해 불행히도 감정까지 발현되어 외로움과 그리움 속에 허우적거렸던 월-E.

이런 미래가 과연 망상으로 끝날까? 아니, 가장 뚜렷하게 그릴 수 있는 현실의 미래가 바로 월-E의 세상일 것이다. 지구의 불투명한 미래를 대비해 이미 행성 이주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로봇공학도 함께 활발히 연구되며 동시에 쓰레기가 쌓여가는 이 땅은 언젠가 월-E의 영화속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럼 정말로 언젠간 우리도 쓰레기가 된 지구를 버리고 도피할지도 모른다. 그럼 우리 손에 원치 않게 태어난 무언가는 홀로 지구에 남아있을 게 분명하다.

그런 곳에 감정에 파묻혀 외로이 살아갈 모습은 가슴 아프다. 그러니 감정의 발현을 찾아 적어도 그 발현을 멈춰줄 수 있어야 한다.

이브를 만나지 못한 확률 속 다른 세상의 월-E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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