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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천 : 원 데이, one day] 일생의 단 한번뿐인 사랑에 대하여

문화 & 예술 이야기/인생 영화 소개

by Aaron martion lucas 2020. 1. 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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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삶을 말하는 일생(一生)이란 단어를 노트에 적어, 이 한 번의 생에 귀속된 것들을 그 아래에 써 내렸다. 시시각각 놓이는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또 다른 길은 영영 잃어버리는 필연적 운명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잘해드리고 싶었고 함께 해드리고 싶었으나, 갖은 사정과 숱한 핑계를 대며 미루고 미루다 결국 잃어버린 할머니와의 시간이 이어 떠올랐고, 홧김에 뱉은 날카로운 말에 아물지 않는 상처를 입혔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 사랑을 나눈 몇 명의 사람 중 한 사람의 이름 석자를 무심결에 써 내렸다. 의외였다. 적어도 사랑만큼은 일생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영위하는 삶 동안 숱하게 지나간 가치였으니까. 이번 사랑이 실패해도 다른 사랑을 만나면 그만이었고, 그다음 사랑이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기 마련이었다. 세상사 나와 짝이 될 사람은 어딘가에 있는 법이니, 적어도 사랑만큼은 일생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게 숱한 기회를 나에게 던져주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쓴 이름 석자에서 나는, 그런 사실 속에 빈틈이 있음을 엿보았다. 그 틈에는 애써 간과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확실한 증거가 박제돼있었다. 그래, 사실 나에게는 아주 오래전에 끝났음에도 여전히 떠올리면 마음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듯 시린 사람이 있다. 일생을 떠올리며 마지막에 써 내린 이름 석자가 그 주인공이다.

혹시, 우리에게 삶이 하나만 주어지듯 사랑도 이를 따라 단 하나만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살면서 사랑이란 이름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마주치지만, 그렇게 마주치는 사랑은 대체로 겉모습만 좋은 미사여구로 꾸며져 있었다. 반면, 그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치 않고 오직 두 음절로 투영되는 순도 높은 사랑은 앞서 말한 사랑만큼 몇 개씩 떠오르지 않는다. 이를 미루어 보면 순도 높은 사랑은 애초에 일생에 단 한 번만 주어지며, 한 사람에게만 건넬 수 있는 '일회성'이지 않을까 하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나는 그 단 한 번의 사랑을 그녀에게 줘버린 탓에 때때로 그리움에 무너지는지도 모른다. 무심결에 쓰는 이름 석자에 모든 사고를 멈추고 만다.

영화 <one day>의 덱스터처럼.

남자 주인공 덱스터(짐 스터게스)와 여자 주인공 엠마(앤 해서웨이)0의 사랑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수많은 사랑을 반복하며 숱하게 엇갈리는 비운 속에서 끝없이 서로를 갈망하던 20여 년의 삶이 여실히 증명한다. 사랑은 단 한 번이며 엠마는 덱스터에게, 덱스터는 엠마에게 이를 건넸다.

1988 7 15일 대학교 졸업식날 친구가 된 둘은, 대개 비슷한 성향을 가진 둘이 만나 이뤄지는 관계치고는 굉장히 상반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작가의 꿈을 꾸며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엠마와 달리 덱스터는 성공을 꿈꾸되, 부유한 가정환경과 인기 좋은 외모를 살려 많은 여자를 만나며 젊음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너무나 다른 서로의 삶. 이 둘은 어떻게 친구가 된 것일까? 그 이면에는 사랑이 되지 못한 엇갈림이 이유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 우정은 비슷한 사람이 만나 맺어지지만 사랑은 상반된 남녀가 서로에게 끌려 맺어지는 결실. 덱스터와 엠마의 마음에는 사랑이 꿈틀거렸지만, 어떤 사정에 의해 둘은 친구라는 사이로 관계를 시작한다. 그 사이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만간다.

그러던 중 엠마가 덱스터보다 한 발짝 빨리, 자신이 가진 일생의 단 한 번의 사랑이 덱스터에게 갔음을 알게 된다. 반면, 덱스터는 힘든 일이 자신을 갉아먹거나 불현듯 엠마가 떠오를 때마다 그녀에게 연락해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으며 조금씩 이를 눈치채기 시작한다. 엠마처럼 나의 사랑도 그녀에게 갔다는 걸. 하지만 둘은 매번 엇갈리기만 한다. 덱스터가 용기를 내 그녀에게 사랑을 말하면 엠마에게는 남자가 있었고, 반대로 엠마가 덱스터에게 사랑을 말하면 덱스터 옆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것이 20여 년 동안 이어졌다.

그동안 둘의 삶은 서로가 없이도 견고하게 쌓여갔지만, 알 수 없는 빈틈이 메워지지 않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엠마가 보고 싶은 덱스터였고, 덱스터를 사랑하는 엠마였다. 결국, 둘은 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맞춰진 타이밍이라는 태엽으로 같은 방향의 회전을 시작한다. 결혼. 둘의 사랑이 드디어 이것을 쟁취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무슨 장난일까. 고작 사랑이란 두 글자로 두 사람을 휘두르던 운명은 가혹한 길로 둘을 인도한다. 결혼하여 여느 부부처럼 행복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엠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토록 갖고 싶던 아이를 갖지 못한 채로...

이후 덱스터는 수년이 지나는 동안 머리가 하얗게 세고 몰골이 피폐해질 때까지 절망 속에 살다, 그러다 겨우 쓰러진 몸을 일으켜 다시 한번 자신을 삶의 궤도에 얹힌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가능하게 된 일이었지만, 엠마를 떠나보낸 그날이 아닌 그녀와 함께한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며 덱스터는 현재를 다시 살아갈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덱스터와 함께 함으로써 빛이 났던 엠마와, 덱스터와 함께 함으로써 진실로 행복할 수 있었던 엠마. 엠마를 빛나게 해 준 덱스터와 엠마를 행복하게 해 준 덱스터. 그는 오랫동안 아니 영원히 그녀의 이름을 새기며 살아갈 것으로 보였다. 일생에 단 한 번의 사랑을 그녀가 가지고 떠났으니.

누구에게나 있을 잊지 못하는 사랑. 우리는 대개 그 사랑에 처음을 붙인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무조건적으로 처음 사랑을 말했다 하여 첫사랑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한 구석을 지그시 누르며 내내 나를 괴롭히는 사랑, 잊지 못하는 사랑을 두고 첫사랑이라 말한다. 지금 눈을 감고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일생이란 단어 밑에 적은 나의 옛 연인의 이름 석자처럼, 당신에게도 바래졌으나 사라지지 않는 이름 석자가 있을 것이다.

덱스터에게 남은 엠마와 같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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