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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천 : 밀양] 용서받았다는데, 제가 어떻게 용서를 해요?

문화 & 예술 이야기/인생 영화 소개

by Aaron martion lucas 2019. 10. 3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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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수업에서 영화 <밀양>을 처음 봤다. 보통 영화가 인상 깊지 않으면 내용이 헷갈리곤 하는데, 몇 년 전에 본 <밀양>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만큼 배우 전도연 연기가 대단했고, 그녀의 감정선에 따라 화나고 슬프고,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했다. 신애(전도연)는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아들 준이와 함께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마침 가는 길에 차가 고장 나게 되고 길 한가운데에서 수리센터 사람과 연락을 나눈다.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밀양으로 왔는데, 처음부터 차가 고장이라니. 그래도 푸른 하늘과 맑은 날씨로 그 지역이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신애는 종찬(송강호)에게 밀양은 어떤 곳이냐고 물었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죠. "

그녀는 내심 이곳만큼 다른 곳이길 바랐을 텐데 종찬이 말처럼 여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신애는 피아노 학원을 차리고, 이웃과 가까워지려 노력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보며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원장님처럼 불행한 분은 하나님의 사랑이 꼭 필요해요

남편을 잃었다는 것에서 사람들은 신애를 불쌍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였을까. 신애는 일부러 땅을 보기도 하고, 곧 땅을 계약할 거라며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나서 집으로 가니 준이가 없었다. 전처럼 숨바꼭질하는 줄 알며 준이를 찾던 그때, 낯선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납치범이었다. 납치범은 신애가 돈 많은 사람인 줄 알고, 준이를 납치하고 거액의 돈을 요구한다. 실제로는 동네사람들에게 괄시 당하지 않기 위해 허세만 부리고 돈은 없었던 신애는 자신의 전재산을 내어 줬지만, 결국 준이는 싸늘한 시체로 그녀에게 돌아온다. 안 그래도 이웃사람들은 신애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는데, 그들은 이번 일로 더 마음 쓰인다며 계속 교회를 오라고 신애를 전도하려 한다.

"원장님에겐 약이 아니라 마음의 치료가 필요해요"

하지만 신애에겐 정말 마음의 치료가 필요했다. 답답하고 화나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지 몰라서 화를 삼키기만 했다. 그러다 답답함에 속이 울렁거릴 때 '상처 받은 영혼을 위한 기도회' 현수막을 본다. 신애는 교회 목사님의 말을 들으며 가슴 때리며 서럽게 울었다. 그동안 풀지 못했던 마음을 울음으로 쏟아내듯. 목사님이 신애의 머리에 손을 올리자 신애는 위로를 받은 표정이었다.

가슴이 누가 막 손으로 짓누르는 것 같이 아팠는데요. 이제는 안 아파요. 평화를 얻었어요. 이제는 정말 제가 겪은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하나님을 믿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정작 홀로 남겨진 집에서 신애는 밥을 먹으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주기도문을 읆조리다 화장실로 들어간 아이에게 자신이 잃어버린 아들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티 내지 않았지만, 신애는 아직 준이를 보내지 못했다. 즉, 그저 그동안 사람들에게 행복한 척 자기감정을 숨겨왔던 것. 교회를 다니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신애는 그냥 자신에게 찾아오는 슬픔을 밀어내고 있었다.

결국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의 면회장면에서 신애는 범인을 용서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범인은 뻔뻔하게도 그런 신애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죄지은 자기를 용서해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용서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힘든 마음도 억누르고, 용서하러 왔는데,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하니 신애는 할 말을 잃었다.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주셨다고요?

신애는 그제서야 자신의 진짜 감정을 알게 됐다. 괜찮지 않다는 걸. 겨우 자신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분을 찾았는데, 그런 사람은 애초에 없었다는 듯 그녀는 하나님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신애는 하늘을 보며 보란 듯이 행동한다. 집사의 남편을 꼬시기도 하고, 기도 하는 사람들에게 가수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노래를 틀기도 한다. 특히 사과 먹다가 자신의 손목을 그으며 사람들에게 너무 아프다고, 살려달라고 말한다. 볼수록 너무 안타깝고 마음 아프다.

영화 <밀양>이 종교를 비난하고자 만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교를 믿으면서 삶의 활력을 찾는 사람도 많으니까. 이 영화의 중심은 우리는 자꾸 다른 사람들의 눈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신애는 종교를 믿기 전에도 사람들에게 자신이 불쌍하지 않다는 걸 보이기 위해 땅을 사겠다며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 종교를 믿은 이후에도 일상 속에서 종종 찾아오는 슬픔을 애써 감추며 자신이 늘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이웃을 사랑해야 하고, 미워하는 마음도 감춰야 한다. 이는 우리가 평소에 상처 받아도 마음을 뒤로 감추는 것과 별 다르지 않았다. 신애는 범인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하고, 아프다고 말한다. 그렇게 아픈 마음을 치료하고자 입원한 그녀, 병원에서 퇴원한 그녀가 처음 발걸음을 옮긴 곳은 하필 그 살인자의 딸이 일하는 미용실이었다. 운명의 장난이 뭔지. 신애는 하늘을 째려보며 집으로 갔고, 그녀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땅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땅에 비친 햇빛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너무 힘들어서 누군가에게 기댈 수는 있어도 내부의 감정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그 과정이 힘들어서 감정을 피하고, 자꾸 뒤로 미루려고 하지만, 결국 우리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밀양>을 보고 나면 용서가 뭔지 생각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 신애가 어떤 마음으로 범인을 용서하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 그녀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빠르게 감정을 정리하려고 했을까? 내면에서 자신이 잘 못 지내는 것처럼 그 범인도 못 지냈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었다. 이미 망가져 있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생각했지만 야속하게도 범인은 생각했던 것보다 잘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범인은 하나님의 용서에 말을 이어갔다. 신애는 하나님께 자신이 용서할 권리를 빼앗긴 것이다.

영화 속 그녀를 보면 나 역시도 자꾸만 억누르던 감정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신애가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아파하는 그녀가 비로소 사람처럼 보였다.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적어도 자신의 감정을 되찾았으니까. 머리를 자르며 새 삶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또 어떤 실연이 찾아올지 모른다. 지나가는 아이를 볼 때마다 준이가 생각날 테고, 방안에 있다 보며 준이의 흔적을 보며 눈물이 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신애의 감정선을 감추지 않고 관객에게 그대로 따라가 만들어 신애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출연 배우들이 모두 연기를 잘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캐릭터의 감정에 너무 이입하게 되어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 힘들기도 했다. 그래도 자신의 아픔을 말하지 못하고 가면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우리들이 한 번쯤은 꼭 봤으면 하는 영화이다.

 

<루카스 매거진 : 자유로운 작가들이 만드는 독립 잡지>
작가 : 답답할때 속을 편하게 해주는 매실처럼 마음 따뜻한 글을 쓰는 "매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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