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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천 : 가장 보통의 연애] 사랑에 대한 환상이 깨지지 않는 이유

문화 & 예술 이야기/인생 영화 소개

by Aaron martion lucas 2019. 11. 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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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처럼 바람의 모양새가 다채로운 것은 없다. 하나의 뜻으로 세상에 내려앉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모양과 상상으로 변화되어, 누군가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꿈으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환상이라는 이름의 사랑은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대게 사랑을 환상이라 일컫는 사람은 사랑을 현실과 교착한 사람과 달리 상처가 없고 반면에 현실과 사랑을 교착한 사람은 대게 어떠한 계기로 이 같은 결말에 다다르곤 한다. 우리 대부분은 사랑을 환상으로 배웠지만 누군가는 사람에 의해 이를 배신당하기도 하니, 환상을 두고 둘은 끝없이 대립한다. 찬바람이 내려앉는 가을 저녁 같은 사랑으로 환상을 믿는 사람과 구름도 그늘도 없는 오후의 뙤약볕 같은 사랑이 사랑의 본질이라 믿는 사람은 끝없이 대립한다.

그리고 여기, 현실과 교착하다 못해 단단하게 고착된 사랑을 가진 여자와 사람에 의해 배신당한 사랑을 가진채 여전히 환상을 말하는 남자가 있다. 당연히 둘은 대립할 수밖에 없지만, 이상하게도 배신당한 사랑의 끝에서 여전히 사랑을 미워하지 않는 남자 '재훈'(김래원)은 '선영'(공효진)이 마냥 밉지만은 않다. 한심하지만 못나지 않았고, 미련해 보이지만 조금 불쌍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고, 열심히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가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단연코 어떤 삶도 그러한 삶만큼 값지고 보람 있는 건 없다고 말하는 재훈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다. 이미 집을 합치고 청첩장까지 돌렸으니, 결혼 준비의 끝을 달리고 있던 중이었다. 매일매일 행복을 순항하던 그였으나, 불행은 탈없이 이어질 거란 행복의 중간에 급작스레 찾아왔다.

일이 바빠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연인을 위해 재훈이 일찍 일을 마치고, 케이크와 꽃다발을 사서 미래의 신혼집이 될 우리의 집에 도착했다. 한데, 현관에는 처음 보는 남자의 신발이 있었고, 식탁에는 방금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곧 들려오는 작은 신음소리. 자신의 연인이 어떤 남성과 침대에 있었던 것이다.

이는 명백한 사랑의 배신. 환상이라는 궁극의 단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재훈은 그녀와 파혼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세상에 버려지듯 홀로 남겨졌다.

선영도 재훈과 사정이 비슷했다. 훤칠한 키와 잘생긴 이목구비를 가진 연인을 만나 남들과 다름없는 사랑을 했으나, 재훈의 연인과 마찬가지로 선영의 연인도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만다. 재훈과 다름없는 명백한 사랑의 배신. 하지만 선영은 재훈과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파혼 후에도 배신했던 그녀가 그리워 매일 술로 버티며 연락을 하던 찌질한 재훈과 달리, 선영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보기 좋게 배신당한 사랑에 반기를 들었다.

"끝나긴 뭘 끝나 너도 맞바람 폈잖아 그럼 퉁친 거 아니야!?"

"그걸 끝났다고 하는 거야 병신아"

통상적으로 알려진 정정당당한 사랑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맛 본 두 사람은 사정은 같았지만, 대응하는 태도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통에 절대 어울릴 수 없었다. 실제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직후에는 사랑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으로 부딪히기를 반복했다.

한 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헤어질 때마다 그렇게 힘들어했냐고 재훈에게 묻던 선영은 그저 사랑에 대한 환상이 깨진 채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일 뿐이라 말했고, 재훈은 그런 선영에게 불쌍하다며 사랑이 가진 대중적인 기적을 운운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열심히 일하며 부양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건데"

바닥까지 치닫는 배신을 당한 재훈의 입에서 여전히 사랑이 가진 환상이 설명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똑같은 사랑을 했고, 비슷한 결의 배신으로 절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재훈은 그럼에도 사랑이 가진 환상에 망치질을 하지 않고 지키는 것을 택했고, 선영은 환상을 보기 좋게 부수며 발가벗은 진실을 대면한다. 선영이 그러기까지 한 번의 배신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으니, 그녀의 사랑에 대한 날카로운 대우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나라도 더 이상 사랑이 가진 환상을 믿고 싶지 않게 될 테고, 그런 상처에도 사랑을 보기 좋게 포장하는 재훈이 좋게 보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좁혀져 갔다. 이는 같은 사랑과 같은 배신을 당했던 동정심으로 좁혀져 가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사랑이었으나, 다른 처우를 보이던 둘이었기에 그들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배신으로 인한 사랑을 하찮게 여기던 선영이 못내 마음 쓰였던 그는 갈수록 그녀가 좋아졌다. 상처를 가진 재훈이 상처를 가진 선영을 위해 제 상처를 서둘러 감싸 않고, 그녀를 끌어안으려 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점차 팔을 벌려 안기던 선영이었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가장 보통의 연애를 보이고자 했다. 헤어지고 남겨진 남자와 떠나보낸 여자가 보통 할 수 있는 가장 흔행 행동들을, 예를 들어 술 마시고 연락하기, 차였던 연인을 찾아가 끝없이 매달리기, 배신 했던 주제에 사람이 아쉬워 또다시 연락해 흔들어 놓기 등 우리가 현실에서 겪을 수 있던 흔한 사건들을 영화에 녹여 젊은 남녀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힘썼고, 실제로 그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배우들이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사랑에 대해 같은 상처를 갖고 서로 다른 대처를 벌이는 두 남녀의 모습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 가진 환상이 여전히 세상에서 유효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였다. 그런 비참한 배신을 당하면서도 끝내 사랑이 가진 환상을 믿었던 재훈에 의해, 환상을 부수고 적나라한 본질에 비소를 짓던 선영이 점차 재훈이 가진 환상을 자신의 깨진 사랑 위에 구축하는 것을 보면서 사랑이 가진 이름 중 '환상'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맞다, 개인에 의해 사랑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질돼도 끝끝내 빛이 바래지 않던 이유는, 재훈처럼 어떤 상처에도 사랑을 져버리지 않고 꼭 쥐고 있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에 의해 상처 받은 사랑이 치유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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