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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전쟁범죄로 얼룩진 레바논 내전, 그리고 레바논 헤즈볼라의 발흥

국제 & 사회 이야기/국제 사회 문제

by Aaron martion lucas 2019. 9. 2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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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전쟁범죄

메나헴 베긴 수상은 엘리 게바 대령과 45분 동안 같이 있었고, 그 후 엘리 게바 대령은 지위를 박탈당했다. 엘리 게바 대령은 수상 말했던 것을 상기했다. 저는 여단장입니다. 저는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저에게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베긴 수상은 대령의 질문에 이렇게 되 물었다. “그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는가?” 엘리 게바 대령이 그러한 명령이 없었다고 말하자 베긴 수상은 말했다.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건가?

 - <뉴욕타임스> 1982 7 29일 기사 중 - 필자(요르고스) 번역

1982, 이스라엘 방위군(Israel Defence Forces)이 레바논을 침공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목적은 표면상으로는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이스라엘을 방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레바논 내의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서 일종의 임시정부 형태로 자리를 잡아가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이하 PLO)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의 뿌리를 뽑고, 레바논 내에 친이스라엘-친서방 성향의 마론파 그리스도교 극우 민병대이자 정당인 팔랑헤당(카타이브당이라고도 함) 정권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사실 그전부터 기회를 틈틈이 노리고 있었는데, 마침 영국 런던 주재 이스라엘 대사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실 이 사건은 PLO와 관련이 없었고, 오히려 PLO와 적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아부 니달"이 이라크에서 이끄는 파벌이 벌인 일이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빌미로 삼아 레바논을 침공했다. 6월 즈음에 이스라엘 방위군은 기세를 타고 베이루트로 향했고, 세 방향으로 나누어 베이루트를 포위하는 전략을 택했다. 일명 베이루트 포위작전(Siege of Beirut)으로 알려진 이 작전에서 이스라엘은 군사력과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무기를 바탕으로 해상과 공중, 육지를 모두 포위시키고 식량과 물의 보급도 차단해버렸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때를 놓치지 않고 베이루트에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다. 곧 엄청난 대학살극이 벌어졌고, 국제사회에서 비난이 잇따랐다. 불과 두 달 사이에 한 도시에 집중적으로 벌어진 이 학살극의 확한 사망자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보수적인 통계에서도 수천 명에 달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레바논 베이루트 포위 작전 당시 이곳은 이스라엘 군으로 인해 지옥으로 변했다.

위에 언급된 기사는 ‘베이루트 포위작전’에서 이스라엘 군 여단장을 맡았던 엘리 게바 대령이 상부의 작전 수행 명령을 거부했던 에피소드를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발췌한 것이다. 당시 ‘베이루트 포위작전’의 총책임자는 훗날 이스라엘의 수상이 되는 아리엘 샤론 당시 국방장관과, 본 기사 발췌문에서 언급된 메나헴 베긴 당시 총리였다. 엘리 게바 당시 대령은 ‘욤키푸르 전쟁’에도 참전한 경력이 있었다. 그런 그가 물리적, 법적 손실을 무릅쓰고 이 작전 수행을 거부한 것은 기사에서 나와있듯 당시 베이루트에는 아이들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민간인이 있었고 그곳에서 군사작전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군인으로서 항명할 수밖에 없는 반인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 사브라와 샤틸라의 눈물이여, ! 베이루트의 눈물이여

이 대학살극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같은 해 9월, 베이루트 남부에서 또 다른 학살극이 자행되었다. 이번에는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와 레바논 시아파 무슬림 커뮤니티가 밀집해 있는 사브라 구역과 샤틸라 난민 캠프에서 벌어졌다. 불과 이틀만에 아동과 노인, 여성들을 포함하여 수백에서 수천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레바논 시아파 무슬림들이 학살당했다. 젊은 남성들의 경우, 일부는 시체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거나, 심지어 가죽이 벗겨지거나 거세된 채 발견되었다. 직접적으로 학살극을 자행한 것은 팔랑헤 민병대원들이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었다. 당시 베이루트를 장악하고 팔랑헤 민병대원(친이스라엘-친서방 성향의 마론파 그리스도교 극우 민병대)들을 지원하고 감독한 것은 아리엘 샤론(전 이스라엘 총리)과 이스라엘 방위군이었다.

사브라-샤틸라 학살 당시 이스라엘 유대교에서 말하는 휴머니즘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학살의 빌미는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고 있었던 팔랑헤 당의 당수이자 당시 새로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바시르 제마옐 암살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도 PLO,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레바논 시아파 무슬림들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바시르 제마옐의 암살자인 하비브 샤르투니는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바시르 게마옐과 마찬가지로 마론파 가톨릭교도였고,친시리아/시리아 민족주의 성향의 시리아 민족당의 활동가였다. 다만 반이스라엘/반시온주의라는 공통의 이해만 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당시는 이스라엘과 PLO 사이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모처럼의 평화가 베이루트에 찾아온 시점이었다. 베니 모리스와 같은 *친시온주의 성향의 이스라엘 사학자들마저도 PLO가 휴전협정을 어기고 무장공격을 감행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휴전협정을 어긴 것은 이스라엘이었다. 아니, 이 모든 것 차치하고서라도 PLO에게 설사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런 죄가 없는 주민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에 면죄부가 되지는 못한다.

*친시온주의 :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들의 민족적 원류로 삼고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해야 한다는 근대 유대 민족주의 이념

UN 총회는 이 사브라-샤틸라 학살 사건을 규탄하고, 이를 대학살(Genocide)로 규정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서방 국가들은 당연히 이 결정에 기권하거나 표를 행사하지 않았다. 그들도 차마 반대표를 행사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스라엘은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 캠프에서 학살과 전쟁 범죄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자신들에게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은근슬쩍 마론파 레바논인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사람은 죽였으나, 내가 죽인 것은 아니다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논리이지 않는가?

레바논 전역이 이처럼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인해 종파 간 갈등이 더욱 격화되는 와중에 무장 저항을 외치며 레바논인들의 가슴을 파고든 조직이 있었으니, 그것이 그 유명한 헤즈볼라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산 나스랄라가 있었다.

레바논 헤즈볼라와 하산 나스랄라 : 테러리즘과 레바논의 호치민 그사이에서

헤즈볼라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보통 내전 시기 (상당수는 이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았던) 여러 갈래의 시아파 무장 저항 단체들을 그 뿌리로 보고 있다.

헤즈볼라의 정신적 지주이자 리더 "하산 나스랄라"

위키리크스 창립자이자 지적재산권 폐지 운동가인 줄리안 어산지는 2012년에 헤즈볼라 현 사무총장인 하산 나스랄라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인물(one of the most extraordinary figures in the world)"로 소개한 바 있다. 이 소개는 나스랄라 개인 뿐 아니라 그가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는 헤즈볼라에도 들어맞는 설명이다.

레바논 헤즈볼라는 비단 레바논 뿐 아니라 이슬람권 전역의 현대사를 돌아보더라도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조직이다. 이슬람주의 무장 단체이면서 그 중에서도 소수인 시아파 무슬림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 준군사 조직이자 현대 문명 국가에서 승인을 얻은 정당 중 하나라는 점, 게릴라 조직으로 출발했지만 선거를 통해 의회에 입성하여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 이슬람의 종교적 윤리에 입각한 사회복지 활동을 벌여왔다는 점, 다른 이슬람주의 단체 및 정당과는 달리 이슬람 신정 국가 건설을 포기했다는 점, 반미 뿐 아니라 반러, 반중을 기본적인 원칙으로 삼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들과 달리 러시아, 중국과도 관계가 형성되어있다는 점 등은 레바논 헤즈볼라를 한쪽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헤즈볼라가 레바논에서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부각된 것은 남부를 점령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방위군을 축출해 낸 일이었다. 이 때 하산 나스랄라는 종교 지도자이자 군사 지도자로서 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출중한 능력을 드러냈다.

헤즈볼라의 독특성은 자국 내 정치에서도 드러난다. 자국에 주둔한 이스라엘, 미국 군대에 대해서는 자살폭탄 공격과 같은 테러 작전도 불사하지만 국내 정치에 있어서 만큼은 의외로 포용적이다. 2006년에 하산 나스랄라는 마론파 가톨릭 교도들이 주축이 된 '자유애국운동(Free Patriotic Movement)'의 당수이자 마론파 가톨릭 교도로서 레바논 내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는 미셸 아운(현 레바논 대통령) 장군과 서로 협력해나갈 것을 공언한 상호협약을 맺음으로써 전 레바논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무슬림들과 그리스도교도들(특히 마론파 가톨릭 교도들) 사이의 갈등 종식에 한 발짝 더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이스라엘의 침공 이후 헤즈볼라가 벌인 재건 사업 역시 레바논 내에서 종파를 막론한 헤즈볼라의 지지율 상승의 요인이었다.

'그들'의 테러와 '우리'의 테러는 다른 것일까

시리아 내전에서 전사한 장병을 추모하는 국민들, 그들은 과연 테러리스트일까?

이제 헤즈볼라의 지지층은 시아파 무슬림들을 넘어 마론파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계 등의 그리스도교도들에까지 확장된 상태다. 레바논 헤즈볼라를 지탱하는 기본 이념은 온건한 시아 이슬람주의로서, 쿠란에 명시된 '아브라함계 종교들의 공존과 화합'을 기본 원칙으로 하여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민주주의 사회 건설이 그들이 표명하는 모토이다.

, 이렇게 보았을 때, 필자는 의문이 가는 지점이 있다. 애초부터 레바논 헤즈볼라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한 서방 및 수니파 아랍 왕정들과 그 산하 기구들의 결정이 과연 헤즈볼라에 대한 객관적인 비판에 근거한 것일까? 그들의 '테러집단' 규정에는 레바논 헤즈볼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란과 시리아에 대한 지리 정치적 견제의 의도도 엿보인다. 더 나아가 레바논 헤즈볼라와 러시아가 사실상 암묵적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 역시도 경계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러시아는 오래 전부터 이랍/이슬람권에서 헤게모니(주도권) 다툼을 벌여왔다. 더군다나 자국 군대에 대한 자부심이 유달리 강한 이스라엘의 점령을 종식시킨 헤즈볼라다. 이스라엘은 어떻게든 눈엣가시와도 같은 헤즈볼라를 없애버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와 협상 이전에 이러한 지리 정치적,경제적 이해에 근거하여 상대를 적, 테러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오히려 긴장을 격화시킨다. 실제로 80년대 이래로 발흥한 여러 이슬람주의 단체 인사들의 언동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편향적인 대외 정책에 따라 더욱 격해지고 선동적이 되어가고 있다. 레바논 헤즈볼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도 현대 세속주의, 민주주의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정치적 지향성을 보면 이슬람주의 무장 단체 중 가장 대화와 협상이 가능한 이들이 레바논 헤즈볼라다.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런 레바논 헤즈볼라를 애초부터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일소해야 할 존재로 본 것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 블록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제 우리는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면서 긴장이 이미 극으로 치닫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레바논도 그 여파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헤즈볼라를 대화의 상대로 협상 테이블에 동등한 위치로 대우하고 현재 문제가 되는 여러 중동국가 문제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서로의 이해관계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있었다면 힘으로 한 나라를 굴복시키는 무자비한 전쟁과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단순히 한사람의 이해관계가 곧 그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개미도 궁지 몰리면 물듯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그들에게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LUCAS MAGAZINE WRITER - 아름답고 자유로운 작가가 있는 곳>
작가 : 요르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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