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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슈] 악마를 잡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 검거 그리고 사라진 공소시효

국제 & 사회 이야기/트렌드 이슈

by Aaron martion lucas 2019. 9. 22.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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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슈 : 19.09.15 ~ 19.09.21]

1986년 9월 19일 오후 2시경, 경기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의 한 목초밭에서 71세 여성 이모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발견 당시 이씨는, 다리가 "X"자로 접혀 있었고 하의가 벗겨져 있었습니다. 부검 결과, 강간의 증거물인 정액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고 사인은 '액사' 즉, 목이 졸려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준비로 떠들썩했기 때문에 경기권역 경찰력 대부분은 치안 유지를 위해 서울로 차출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그렇게 모두의 기억 속에 조용히 잊혀지는 듯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악몽이 시작이었다는 걸.

대한민국 최대의 미제사건, 33년간의 악몽

<화성 연쇄 살인 사건 기록 : 기존 8차 박양 사건은 모방 범죄로 밝혀져 7차 김양 사건으로 대신함> 

1차 (이씨 : 71세) 시집간 딸의 가을 일거리를 도와주기 위해 하룻밤 머문 후 새벽 경 집을 나선 후 피살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에서  하의가 벗겨진 시신으로 발견
(사인 : 교살)
성폭행 흔적은 없었으나 피해자 양말에서 질액이 검출
(성추행의 흔적)
2차 (박씨 : 25세) 미모의 피해자로 소개팅 자리 이후 수양 어머니 집에 들렸다 밤 8시 50분 경 집을 나선 후 피살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에서 하의가 벗겨진 시신으로 발견
(사인 : 교살)
가슴 부위에 수 점의 자상 발견, 성폭행 이후 교살
3차 (권씨 : 25세) 남편 직장인 수원에서 함께 저녁식사 이후 귀가 중 피살 태안읍 안녕리 논에서 블라우스 끈으로 결박된 채 발견
(사인 : 교살)
얼굴에 팬티를 씌운채 발견, 성폭행 이후 교살 
4차 (이씨 : 22세) 인근 섬유공장에서 근무 후 저녁에 맞선을 본 뒤, 늦은 밤 막차를 타고 귀가 중 피살 정남면 관항리 논에서 블라우스 끈으로 결박된 채 발견
(사인 : 교살)
거들이 얼굴에 씌여 있었으며 피해자 우산으로 음부를 여러차례 찌른것으로 확인
5차 (홍씨 : 19세)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졸업을 남겨 둔 시점에 수원시 한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귀가 중 피살 태안읍 황계리 논에서 브래지어로 손이 묶인 채 발견
(사인 : 교살)
경찰 수사본부에서 1km 떨어진 곳에서 범행 실행, 성폭행 이후 교살
6차 (박씨 : 29세) 때아닌 봄비가 내리자 퇴근하는 남편을 마중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중 피살 태안읍 진안리 야산에서 상의가 벗겨진 채 발견
(사인 : 교살)
어깨 부분에서 돌과 같은 흉기에 의한 상처 발견, 성추행 흔적 발견
7차 (김씨 : 19세) 가족의 크리스마스 케익을 먼저 먹으려다 모친의 잔소리에 집을 뛰쳐나간 후 피살 수원시 화서역 논에서 하의가 벗겨진 채 발견
(사인 : 교살)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변 발견, 성폭행 이후 교살
8차 (안씨 : 54세) 장남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을 거들고 저녁 9시 30분경 귀가 중 피살 팔탄면 가재리 논에서 음부가 심하게 훼손된 채 발견
(사인 : 교살)
음부에서 복숭아 9조각 발견, 우산으로 음부 훼손
9차 (김씨 : 14세) 오후 6시 30분 경 하교 중 피살 태안읍 병점리 야산에서 상의가 벗겨진 시신으로 발견
(사인 : 교살)
브래지어로 재갈을 물린 채, 음부에서 볼펜 및 포크등 피해자의 소지품 발견, 가슴 부위 자상 19 점 발견
10차 (최씨 : 69세)  버스에서 내려 귀가 도중 피살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발견
(사인 : 교살)
용의자 지문 2족 및 정액 발견

1986년 9월 19일 1차 피해자를 시작으로 1991년 4월 3일까지 무려 10건의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되었습니다. 10차례 사건 모두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고 중학생부터 할머니까지 연령대도 특정할 수 없었습니다. 강간과 살인이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번갈아 이루어졌고 속옷을 안면에 씌우거나 브래지어 끈으로 두 손을 뒤로 묶는 등 당시로써는 대단히 충격적인 범행 수법이 화제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명 "화성 연쇄 부녀자 살인사건"이라는 타이틀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것은 6차 사건이 지난 후였습니다.이미 너무나 많은 피해자들이 희생된 후였지요. 이때까지 경찰 당국은 피해자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건을 조사해왔습니다. 현재라면 비슷한 수법의 살인이 2~3건 이상 인근 지역에서 보고될 경우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수사하였겠지만 당시에는 연쇄 살인이라는 개념 자체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때였기에 이러한 초동 수사의 미진은 희생자의 수 늘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범인은 10차 사건을 마지막으로 홀연히 사라지게 됩니다. 

사건이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이미 6명의 희생자가 나온 뒤였다.

한편 일각에서는 5년 동안 이어져온 연쇄 살인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에 대해 무수한 추측들이 불거졌습니다. 많은 범죄심리학자와 수사관들은 연쇄살인사건은 범인을 검거하여 수사 종결은 있을지 언정, 살인마가 스스로 살인을 멈출 수는 없다는 논리를 앞세우며 이것이 연쇄살인사건에서 종종 나타나는 살인 공백기 혹은 냉각기로 언젠가 반드시 재발할 것이라는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화성 연쇄살인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새로운 실마리를 찾기 못한 채 2019년까지 이 사건은 무려 33년간 대한민국 대표 미제사건으로 많은 이들의 악몽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의 과거 예언이 주목받고 있다.

유영철 : 살인 유희에 한번 빠지면 죽기 전엔 끊을 수 없는 중독과 같다. 화성 연쇄 살인범이 만약 살아 있다면 그는 분명 수감 중일뿐 살인을 멈춘 것이 아니다.

정남규 :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악몽이었기에, 악마를 잡아내다.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의 또 다른 이름, "화성 괴담"이라 불린 이유는 피해자뿐 아니라 이 사건에 연루된 많은 이들의 목숨이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 5명의 유력 용의자는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과정에서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였고, 당시 수사본부 관계자 3명은 수사 종결 이후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병을 얻거나 자살을 택하였습니다. 이렇듯 대한민국 경찰에게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지울 수 없는 치욕이자 악몽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1990년 화성경찰서 소속 기동대 소대장이었던 대한민국 프로파일러 "표창원" 의원

표창원 의원 :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을 잡지 못한 자괴감은 제 삶을 압도한 부채감이었습니다.

사실상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같이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의 증거물은 폐기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입니다. 하지만 경찰이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많은 수사관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은 지우지 못할 대한민국 경찰 역사의 트라우마가 되어 통상 공소시효가 지났음에도 사건의 증거물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2019년 7월 15일 새로이 DNA 증폭 및 복원 기술 개발되었고 이를 계기로 경찰은 7월부터 국과수(국립과학수사 연구원)으로 화성사건의 증거물들을 감정 의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현대 교도소 수감자들의 DNA 데이터 베이스에서 5차, 7차, 9차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하는 수감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33년간 자신이 만든 악몽 속에 숨어 살던 악마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모두가 경악을 금지 못하게 됩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DNA와 일치한 범인은 1994년 청주 처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0년 넘게 부산지방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이춘재" 였습니다. 

화성 연쇄살인마 "이춘재" 그는 누구인가?

베일이 감춰졌던 살인마의 실체가 밝혀지자 놀랍게도 그는 20년 동안 교도소에 복역하면서 주변 수감자들과 교도관들로부터 조용하고 손재주가 많은 1급 모범수였습니다. 일부 교도관은 그가 선고받은 무기징역이 아니었더라면 가석방까지도 가능했을 만큼 평이 좋은 수감자였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무기징역의 경우 20년 이상 복역 시 가석방이 가능함) 

화성 연쇄 살인범 "이춘재" 고등학교 시절 모습 / 화성 사건 몽타쥬

그는 94년 사건 이전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조용하고 내성적이나 때때로 매우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연쇄 살인의 공백기인 91년 7월 결혼한 아내의 진술에 따르면 화가 나면 자신뿐 아니라 2살짜리 아들까지 폭행하고, 심각한 성도착증이 있어 자신을 시시때때로 강간해 이를 참다못해 결국 가출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 가출한 아내에게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아둬라"라고 협박하며 "아내가 다시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 못하도록 문신을 새기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고 다니다 결국 1994년 1월 14일 자신의 집을 방문한 처제에게 수면제가 섞인 음료수를 먹여 강간하고 둔기로 처제를 살해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된 이후로는 20년간 단 한 건의 문제 행동도 보이지 않아 1급 모범수로 분류되었으며 교도관과 함께 다른 수형자들의 교화를 돕는 반장직까지 맡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범죄 심리학자 및 프로파일러에 따르면 오랜 기간 자신의 범죄를 위해 잠복하고 기다리면서 피해자들을 노린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행 수법을 보면 이춘재가 화성연쇄살인사건 진범임을 들키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살인 유희를 즐기기 위해 가석방을 통해 다시금 세상에 나오고자 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범인은 잡았지만 처벌 가능한 죄목은 없다.

  1. 사람을 살해한 살인 범죄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2000년 8월 1일 이후 사건부터 적용)
  2. 강간 살인 범죄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1995년 4월 16일 이후 사건부터 적용)

화성 연쇄살인범을 잡았지만 많은 이들이 아쉬운 탄성을 지르는 이유는 그를 처벌할 수 있는 어떤 규정도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인이라는 범죄는 엄연히 공소시효를 적용받지 않는 중범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소멸제도의 폐지 이전,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경우 살인 공소시효 15년인 2006년 해당 사건의 모든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소멸되었습니다. 

개구리 아이들 실종사건과 화성 연쇄살인 사건 공소시효 만료 1달 전인 2006년 3월 초 검찰 내부 인트라넷을 통해 하나의 글이 올라오게 됩니다.

개구리 아이들 실종사건과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의 피의자를 성명불상자로 기소하자

"성명 불상자" 말 그대로 이름 없는 용의자를 기소하자는 주장이었습니다.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된다면 비록 특정 용의자가 없기 때문에 재판이 열리지는 못하더라도 재판부가 면소판결을 내리는 15년이란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당시 일부 검사들(현재 이성윤 검찰 국장 포함)이 15년간 과학 기술의 발전과 혹시 모를 범인 검거를 기대하며 내세운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특정되지 않는 용의자를 기소한다는 것은 너무 무모한 일이며 재판부에서 공소기각(기소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음)을 한다면 오히려 유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묵살당하고 맙니다.

결국 두 사건은 영원히 처벌할 수 없는 선을 지나버리고 2015년이 되어서야 살인사건 및 중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사라지게 됩니다. 


공소시효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공소시효 :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범죄 증거물이 소실되고, 증인의 기억이 흐려져 사건의 사실 관계를 밝히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오히려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 피의자를 보호하고, 잡히지 않은 범인을 영원히 벌을 받게 되는 지위에 둔다면 법이 추구하는 사회 정의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 스스로가 범죄자를 재빨리 잡지 않은 책임을 지는 것

범죄란 우리 모두가 어떤 행위에 대해 처벌을 약속한 행위가 아닌, 국가가 특정 행위에 대해 법이라는 것으로 범죄라고 규정지은 행위를 말합니다. 따라서 범죄를 만든 것은 사람이 아닌 국가이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공소시효를 부과하는 것은 범죄를 저지른 개인이 아닌 국가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킴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33년이 지난 사건의 진범이 잡힌 지금, 책임을 지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공소시효가 말하는 법이 진정 추구하는 사회정의란 무엇일까요? 

잡히지 않는 범인이 도망치며 그 죄를 뉘우치고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경범죄에 국한되는 경우일 것입니다. 그리고 공소시효의 존재에 강한 뒷받침이 되는 범죄 증거물 소실의 경우 현대 과학의 발전으로 세월이 지나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증거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과거 일개 평검사들이 주장해 묵살당한 개인정보 기반의 기소가 아닌 생체정보 기반의 기소처럼 대한민국의 공소시효 제도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때일 것입니다. 

최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이춘재"의 만료된 공소시효를 부활시켜달라는 청와대 청원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법은 그가 어떤 사람일지라도 공정하게 결론 지어야 하고 그에게 다시 처벌을 물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미제사건 해결을 계기로 2015년 "태완이 사건"(어린이 얼굴에 황산을 테러한 범인의 공소시효 소멸을 앞두었던 사건 / 이후 중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사라지는 형사소송법 개정이 이루어졌다.)이 만들었던 대한민국이 나아가는 발걸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루카스 매거진 : 자유로운 작가들이 만드는 독립 잡지>
에디터 : Aaron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aaronmartinoluc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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