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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과테말라 여행기 3편]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아티틀란 호수

생활 정보 이야기/해외 여행 일지

by Aaron martion lucas 2019. 9. 2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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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구아 구경을 끝낸 후 보통의 여행안내서에서 추천하는 자연스러운 코스는 안티구아와 마찬가지로 화산에 둘러싸인 아티틀란 호수(Lake Atitlán)에 들르는 것이다. 안티구아에서 며칠 지낸 후 아티틀란 호수에서 또 며칠을 지내고 과테말라 최대의 자연놀이터 세묵참페이(Semuc Champey)로 이동하라는 내용이 많은데, 이렇게만 들으면 아티틀란 호수가 안티구아와 비슷한 규모라고 착각하기 쉽다. 나도 과테말라 여행 책자로만 접했을 때에는, 작은 마을 몇 군데와 호숫가의 해수욕장 같은 열대 관광지 혹은 국민 피서지 느낌이려나,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발을 디딘 아티틀란 호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선 호수 크기부터 남달랐다.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깊은 호수로 유명한만큼 색도 짙었고, 반대편 마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해수면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호수를 둘러싼 열몇 개의 마을들에는 고대 마야 민족의 후손들이 제각기 다른 전통적 개성을 지닌 채 살고 있었다.

파나하첼(Panajachel) 호텔 정원에서 바라본 아티틀란 호수의 풍경

여행을 준비하며 사진을 찾아 보았을때 나는 당연히 아티틀란 호수가 동남아와 비슷한 날씨일 줄 알았다. 구름이 거의 없는 맑은 하늘에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사람들은 물가에서 수영복을 입고 해수욕을 즐기고 있으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선선한 한국의 봄 날씨와 비슷했다. 그래서 직접 방문했을때 더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 같다. 두 눈으로는 잔잔한 호수 표면에 반짝거리는 햇빛과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초록 식물들이 보이는데, 반대로 피부에는 섭씨 20도 중반 남짓한 선선한 바람과 보송보송한 습도의 쾌적함이 느껴졌다. 마치 유토피아가 있다면 이런 장소가 아닐까 싶었다. 밤에는 15도 정도로 조금 쌀쌀해지기 때문에 얇은 스웨터 하나를 걸치면 따스한 포근함도 느낄 수 있다온도 조절 장치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 여름에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고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사치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아늑하게 잠들 수 있다.

날씨가 기본적으로 좋다 보니 길을 걷다 보면 시장도 활짝 열려 있고 사람들이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내가 묵었던 파나하첼(Panajachel) 마을의 호텔도 조식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중간쯤에 테이블을 세팅해 놓고 뷔페식으로 제공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아침부터 호숫가에서 노는 아이들 소리로 여유롭고도 쾌활한 분위기였다. 파나하첼은 아티틀란 호수를 둘러 싼 마을들 중 가장 발달된 관광지이다. 럭셔리한 호텔과 값싸고 분위기 좋은 식당도 많이 위치해있다. 당연히 관광객도 가장 많고 그에 따라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전통 마야 민족이나 그 생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 아예 자리잡고 사는 외국인 주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과테말라 특유의 전통성이나 독특함은 덜 하지만 교통편이 가장 편리하고 필요한 물품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어 되도록이면 파나하첼에 숙소를 잡고 낮시간 동안 다른 마을을 둘러보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아티틀란 호수 주변이 경사 지대라서 마을 안에서 이동할 때에는 항상 걸어 다녔다.. 예쁜 풍경은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예쁘니 천천히 걸으며 계속 둘러보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길을 걷다보면 종종 길가에 바나나튀김(Plátanos Fritos)을 파는 노점상도 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나나와 조금 다르게 생겼는데, 맛도 덜 달아서 담백하다. 기본적으로 위에 연유나 설탕을 뿌려주지만 나는 단맛을 가미하지 않은 본래의 맛을 선호한다.

나름의 별미 음식인 바나나 튀김 요리, 설탕은 기호에 맞게 뿌려달라고 하면 된다.

물론 이곳에도 맥도날드와 타코벨 등 수많은 프랜차이즈가 입점해있다. 특히 파나하첼에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이주민이 햄버거집이나 카페를 차려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개중에는 눈이 번쩍 떠지는 바베큐 식당도 있으니, 외국인이 많다고 무조건 피하지는 말길 바란다.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만 아니라면, 꼭 과테말라 전통음식이 아니더라도 그 집 고유의 맛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처럼 전통의 맛과 우리와 낯설지 않은 서구의 맛이 함께 가미된 모습이 오늘날 과테말라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산티아고로 가는 란차(lancha - 섬 사이를 운항하는 작은 여객선) 위에서

파나하첼에서 란차(lancha)라고 불리는 작은 배를 흥정해서 타고 반대편 화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가로질러 가면 산티아고(Santiago)라는 이름의 아티틀란호수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을이 나타난다. 산티아고는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만큼, 과테말라 내전 당시에도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곳이다.. 비폭력 집회를 열었던 시민들이 이 과정에서 정부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했고, 외국인 선교자들도 무수히 처형당했다. 그러한 희생의 아픔을 딛고 지금의 과테말라를 탄생시키는데 이바지한 곳이 바로 이 곳 산티아고다. 우리는 이런 과테말라의 아픔이 깃든 내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전된 성당을 보러 갔는데, 독특하게도 성자 상마다 전통 마야 복장을 입혀놓았다.

마야 전통 종교에 기독교적인 색상을 입힌 듯한 산티아고 성당의 내부 모습

십자가나 성자상만 언뜻 보면 마야인들이 전통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듯 하지만, 옷이나 장신구, 미술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기독교적 상징물을 마야 종교에 접목하여 보다 근대적이고 시각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사용한 것 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여전히 마야 언어로 기독교에는 없는 자신들만의 의식을 치른다. 단지 그 장소가 마야 사원에서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 지어진 성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묘하게도 16세기에 성당을 건축 할 당시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마야 사원을 허물다 말고 본래의 돌계단 위에 새하얀 유럽식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탄생부터 마야 유적의 기반 위에 가톨릭이 들어섰던 것이다. 만약 이 성당에 와보지 않았다면 나는 마야 전통과 근대 유럽 문명이 도대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것인지 쭉 아리송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용히 산티아고 사람들의 하루를 지켜보면 전통이란 고집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지켜나갈 때 훨씬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낯선 방문객에게 활짝 웃어 보이는 그 마음씨가 현재의 마야 문명을 지켜온 것이 틀림없다.

 

 

<LUCAS MAGAZINE WRITER - 아름답고 자유로운 작가가 있는 곳>
작가 : 반미국인 반한국인 "25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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