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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과테말라 여행기 2편] 본격적인 안티구아(Antigua) 탐방

생활 정보 이야기/해외 여행 일지

by Aaron martion lucas 2019. 9. 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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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무제오 카사 산토 도밍고"(Hotel Casa Santo Domingo)였는데, 누가 문화재 도시 아니랄까 봐, 심지어 호텔 안에도 유물과 건축물 잔해가 즐비해 있었다. 주차장에서 호텔 메인 건물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식민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보석과 작은 조각상 등 권력을 나타내는 화려한 예술 작품들이 유리 케이스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하나하나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이미 몇 번 와봤던 사촌동생은 그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이 따로 있다며 저만치 뛰어갔다.

안티구아(Antigua) 수도원을 개조해 고풍스런 정취를 보이는 카사 산토 도밍고 호텔 (Hotel Casa Santo Domingo)

하지만 호텔과 연결되어 있는 옛 Santo Domingo 성당터에 가보면 지하에 성당에 속했던 과거 성인의 유골이 관에 담겨있다. 지하 공간인 데다 워낙 옛날 건물의 잔재라서 그런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풍스러운 성당과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성스럽다기보다 음침함에 가깝달까. 특히 별다른 장식이나 동판 없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유골을 마주치는 순간, 금방이라도 귀신이 내 어깨를 툭툭 칠 것만 같은 오싹함에 후다닥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는 지상으로 도망쳤다.

Santo Domingo 성당 지하 : 아무리 성인의 유골이라지만 무서운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으스스한 성당터가 있는가 하면, 아직까지도 사용되기 때문에 예쁘게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화려한 외관으로 관광객들의 발이 끊이지 않는 성당도 있다. "라 메르세드 성당"(Iglesia de la Merced)는 외벽 전체가 파스텔톤의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고 외벽 2, 3층에도 섬세하게 깎아낸 성인들의 조각상이 붙어있다. 내부도 금박 장식과 예수 조각상 등으로 잘 꾸며져 있어 무료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구경할 거리가 많다.

이미 유명한 관광지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성당 입구 앞에는 각종 간식거리와 기념품을 판매하는 사람들 역시 많다. 여기서 시원한 과일주스를 한잔 사서 나눠 마시고 본격적으로 건물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성당은 16세기 중반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진 피해를 막기 위해 건물을 최대한 낮게 설계하고 아치와 기둥들은 두껍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로서는 상당히 심도 깊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의 지진을 겪으며 보수 작업을 거쳤고, 지금의 교회 앞면 장식(파사드, facade)는 19세기에 덧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앞마당에 남아있는 돌 십자가는 이 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구조물이라 휘황 찬란한 성당 건물과는 대비되어 둘의 묘한 조화가 안티구아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일 것 같다. 교회 뒤편으로 들어가면 아주 크고 예쁜 분수대가 있는데, 관광객이 많지는 않았다. 예쁜 분수는 꼭 여기가 아니더라도 안티구아 곳곳에 많이 있기도 하고, 분수 자체의 규모 외에는 특별히 볼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분수가 안티구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였다.

"라 메르세드 성당"(Iglesia de la Merced) 뒷편 Feunte de Pescados 분수

"라 메르세드 성당"을 구경했다면 반드시 그 뒤편으로 가보길 바란다. "Feunte de Pescados"라 이름 붙여진 이 분수는 18세기에 지어졌으나 지진에 의해 붕괴되었다가 1944년 재건되었다. 지름 27미터로 과테말라, 더러는 중미 심지어 남미 전체 지역에서 가장 큰 분수 유적이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연꽃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고대 마야 전설에 따르면 연꽃은 창조와 힘을 뜻하는 상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도 않는 교회 뒤편의 폐허로 남아있다. 탁한 물과 색 바랜 페인트, 구석구석 끼어있는 이끼들. 창조와 힘이라는 단어들이 갖는 생동감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앞에 서서 천진난만하게 비눗방울을 불고 있는 사촌동생은 생동감이 넘쳤다. 마치 에덴의 정원에서 보호받고 사랑받으며 지냈을 어린 아담처럼.

분수대 앞에서 자신의 비눗방울 실력을 한껏 뽐내고 있는 사촌 동생

그 폐허 속의 아이는 나의 지나버린 어린 시절 속 행복을 그립게 했다. 누나, 내가 얼마나 크게 불 수 있는지 잘 봐봐! 카메라 준비해야 돼!’ 잔뜩 신이 난 사촌동생을 바라만 보아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는데, 그 너머에 보이는 나의 유년시절은 한편으로 내 가슴을 저며 오게 만들었다. 오래전 근거 없이 만만하게 보였던 세상도 사촌동생처럼 참 예뻤는데, 우리 세대는 입시에 시달리고 학자금 걱정을 하기 시작하며 원치 않게 철이 들어버리고 겁을 먹었다. 지금은 빛을 잃고 말 그대로 거대한 공터가 되어버린 분수가 세상과 부딪히기 시작한 내 모습처럼 보였다. 저 분수에도 영혼이 있다면 나와 같은 눈빛을 하고 작은 손이 만드는 비눗방울을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유럽 도시기행>에서 유시민 작가가 말했듯이 모든 찬란한 것들은 결국 사라지는 법인 듯하다. 그래도 그 뒤에 찾아오는 또 다른 찬란함이 있으니 이 지구는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겠지... 나의 20대는 결코 10대와 같지 않겠지만, 간간이 10대 때 못지않은 예쁜 추억들이 저 비눗방울처럼 날아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티구아(Antigua)의 배웅을 받으며,

안티구아에는 중심 시내를 벗어나서도 정처 없이 걷다 보면 계속 폐허가 된 옛 건물 잔해들과 마주친다. 대부분은 반 이상 벗겨지고 무너진 모습이다. 앞서 말한 "Fuente de Pescados" 분수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그래서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분수들도 많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평화롭게 목욕을 즐기는 비둘기도 있고, 어린 동생을 업고 산책 나온 꼬마 소녀도 있다. 그늘 진 벤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관광객도 있고, 나처럼 열심히 사진 찍고 수다 떠는 관광객도 있다. 저녁에는 근처에서 과테말라 전통악기로 공연을 펼치는 중장년의 남성그룹도 보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빙~ 둘러서서 영상을 남기기 바빴다. 고요한 낮 풍경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광장이었다.

일생동안 대도시에서만 살았던 나에게 안티구아는 여유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준 도시였다. 아마 과거 권력의 중심지였을 때에는 안티구아도 서울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욕망과 자본이 과테말라시티로 옮겨간 지금, 그저 돌덩이들과 살가운 사람 냄새만 남아 있을 뿐이다. 톨스토이의<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나 미치앨봄의<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받은 인상이 정확하다면, 아마 모든 인생살이의 끝도 비슷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신념들이 사실 별 것 아닌 것 임을 깨닫고, 허탈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진정 소중한 줄 모르고 지나쳤던 작은 행복들이 눈에 띌 것이다. 안티구아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 이렇게 배웅하지 않았을까?

이봐, 여행자! 한번 사는 인생, 쓸데없는 건 버리고 웃으면서 살아!

 

 

<LUCAS MAGAZINE WRITER - 아름답고 자유로운 작가가 있는 곳>
작가 : 반미국인 반한국인 "25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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