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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뉴욕 여행기 완결] 뉴욕은 멈추지 않는다, 그라운드 제로와 월 스트리트를 향한 여정

생활 정보 이야기/해외 여행 일지

by Aaron martion lucas 2019. 12. 2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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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틀 동안은 누구나 좋아할 ‘관광 즐겼다면, 셋째날은 훨씬 진지하고 개인적인 ‘여행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아침 일찍 우리는 간단하게 호텔에서 제공하는 Continental Breakfast(유럽식 아침 식사 : 보통 커피와, 버터와 잼을 바른 작은 빵으로 이뤄짐) 배를 채우고 9/11 기념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저절로 침묵하고 나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되는 곳이었다. 기념관의 위치가 지도 상으로는 숙소에서 굉장히 멀어보였는데, 지하철이 워낙 빨라서 그런지 30분도  걸리지 않아서 금방 도착했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에는 공사 중인 오큘러스를 통해 지하철역에서 빠져나와 길을 건너면 바로 기념관 건물이 보인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오큘러스를 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을, 처음 가보는 대규모 몰이다보니 출구를 찾는 데만 15 가까이 낭비한  같다. 한참을 헤매다 유독 사람들이 많이 가는 듯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간신히 대로변의 출구에 다다를  있었다. 역시 길을 잃었을 때에는 인파를 따라가는 것이 답이다.

911 테러 현장 일명 "그라운드 제로"에 세워진 오큘러스 환승센터, 평화의 상징 비둘기를 표현하고있다.
오큘러스 환승 센터의 내부 모습

미로같은 내부와 평화의 상징 흰 비둘기를 모티브로한 오큘러스에서 빠져나오면 9/11 기념관의 시그니처 인공 폭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워낙 규모도 큰데다 주변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폭포는 원래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에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3 전쯤 방문했을 적에는 특별한 날이었는지 수백개의 노란 장미가 폭포 주변에 적힌 희생자 이름 하나하나에  송이씩 꽂혀있었다. 마치 한명 한명의 희생자가 별이 되어 빛나는 것처럼, 밤의 짙은 어둠과 대조되는 노란빛이 상당히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일전에  분위기에 이끌려 이름 하나하나를 숙연하게 읽어나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동행한 친구도  장면을   있었으면 했으나, 아쉽게도 이번에는 손에 꼽을  있을 정도의 개수만 띄엄띄엄 꽂혀있었다. 

911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장미가 이름 옆에 꼿혀 있다.
9.11 추모 기념관의 모습, 사고 당시의 잔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기억되고 있다.

9/11 테러를 둘러싼 루머와 음모론은 정말 많다. 동영상을 자세히 보면 비행기가 충돌하기 전에 이미 폭발이 일어났다는 주장부터 미국 정부의 자작극이었다거나  국방부가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조치하지 않았다는 설까지 다양하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기에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일터이다. 비록 9/11 사건 뒤편에서 벌어지던 정치싸움을 우리가 낱낱이   없다고 해도,  가지 분명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결과의 희생자였다는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했던 사람들. 여느 때처럼 편안하게 비행기에 올랐던 사람들. 여느 때와 같이 그들을 배웅하던 가족과 친구들. 기념관에 가면 그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시각적으로도 눈이 번쩍 뜨이는 전시품이나 사진  동영상이 즐비하지만, 오히려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는 것은 청각적 장치들이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목격자의 비명소리나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가족과 친구들의 흐느낌, 그리고 듣는 순간 울컥할 수밖에 없는 내용과 떨림이 그대로 담긴 음성 메시지들.  기념관에 두번째 방문이기에 처음에 보지 못했던 디테일에  집중할  있었고, 그래서 익숙하기는커녕 처음보다   전율이 일었다. 그렇게 9/11 메모리얼 벽에 새겨진 로마시대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한 구절은 억겁의 시간을 넘어 먹먹함을 남겼다.

추모관 입구에 벽면에 새겨진 글귀가 가슴속 한켠을 울컥하게 만든다. 

Nodayshalleraseyou from the memory of time / 시간의 기억으로부터 당신을 단 한순간도 지울수 없다.

- 로마시대 시인 베르길리우스 -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규모 기념관은 많지 않다. 내가 방문했던  다른 기념관은 2년쯤 전에 베를린에서 반나절을 보냈던 홀로코스트 기념관이었다.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예쁜 공원길을 따라 10 정도 걸어가면 조금씩 다른 크기의 추모비들이 세워진 광장이 보인다. 광장 안쪽에 홀로코스트 기념관으로 가는 입구가 있고, 광장에서는 햇살을 받으며 추모비 위에서 생각에 잠겨있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2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수많은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해 2005년에 설립되었는데, 추모 뿐만 아니라 독일 스스로 자국 역사를 반성하는 의미도 담겨있어 더욱 특별했다.  외에도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9/11 기념관에서도,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도, 관람객들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관광객이 된다. 모두가 다른 곳에서는 느껴본  없는 분노와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어떤 책임감이나 다짐들을 심연에 새기고 있다. 삶의 의미가 달라지는 공간이다. 

2001년 9월 11일 그날의 악몽을 우리는 기억하지만, 요즘 세대는 미국이 테러를 당했다는걸 믿지 않기도 한다. 

우리의 세대는 9/11 당시의 상황을 뉴스로 생생하게 목격했고 그 충격도 말할 나위 없었지만 요즘 세대는 직접 보지 못했으니 그 충격과 공포도 알지 못하는것이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기념관에서도 아이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전시품을 가리키고 귓속말로 설명해주고 있는 부모들을   있다.  곳곳에서 엄숙한 표정으로 견학을 돕는 가이드도 자주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함께 듣는다고 쫓아내지 않으니 궁금하다면 부담없이 다가가서 설명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가이드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내용도 글로 쓰여있는 정보보다 풍부할 뿐만 아니라 귀에 쏙쏙 박혀서 기억에도 많이 남는다. 하지만 몇몇 전시들은 전시의 성격상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입구에서 엑스레이 검사가 이루어지는 만큼 보안과 질서에 신경을 많이 쓰는 곳이니 유의하여 무탈하게 뜻깊은 관람이 되도록 하자.

9/11 기념관에서 나와서 우리는 월스트리트로 향했다. 첫번째 목적지는 월스트리트의 상징으로 유명한 Charging Bull 동상이다. 경제학도로서 월스트리트에 가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지친 표정의 회사원 몇명과 황소 동상 앞에서 사진   찍으려고 무질서하게 몰려있는 관광객 무리 뿐이었다. 인턴으로 일을 하는  이곳에서 직접적인 업무 경험을 쌓는다면 모를까, 방문만으로는 아무런 감흥도 일지 않았다. 심지어  유명한 골드만삭스 건물은 월스트리트가 아닌 다른 동네에 위치해 있으니 실망감을 이루말할  없었다.

월 스트리트의 명물로 자리잡은 "Charging bull" 동상
2017년 세워졌다가 사라진 겁없는 소녀상 (1주일 설치기간이었지만 1년동안 황소앞에 서있었다)

동상에 대해 설명하자면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일명 "검은 일요일"이라고 불리던 날 뉴욕증권시장의 주가는 그날 하루 만에 508포인트, 퍼센티지로는 전일 대비 22.6%가 주저앉아버렸다. 이 수치는 1929년 그 유명한 경제 대공황의 시작이었던 대폭락의 수치를 상회하는 것으로 이 후 뉴욕 증권가는 차갑게 식어버렸고 모두가 활력을 잃고 고개를 숙인 시민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이러한 시민들의 모습을 보다 못한 이탈리아 예술가 "디 모니카"는 1989년 역동적이고 힘이 넘치는 돌진하는 형상의 황소 동상을 설치해 이 동상을 보며 길을 걷는 미국인들에게 그 에너지가 전달되도록 하였다. 이후 황소 동상은 뉴욕 시에서 "디 모니카"에게 영구적으로 임대하는 형식으로 자리잡아 지금의 월 스트리트의 명물이 되었다. 그렇게 20년 넘는 시간동안 거리를 지키던 황소 앞에 2017년 당돌한 소녀가 찾아왔다.  

이 겁없는 소녀상은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의라는 월가의 회사에서 사내 여성의 비율을 늘리자는 여성인권 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는데 지난 과거부터 현재까지 월가는 남성 우월주의 사상이 팽배한 분위기 였다. 이러한 월가를 대표하는 황소 동상앞에 작지만 굳센 모습의 소녀상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여성 인권의 향상과 고용 평등을 외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여성 시민들의 사랑과 매우 흥미로운 이 두 동상의 동거를 지켜보는 여행객들로 인해 1주일 동안 설치 된 후 철거 예정이었던 겁 없는 소녀상은 1년 동안이나 황소 앞에 서 있다가 2018년에서야 비로소 철거되었다.

뉴욕 월 스트리트를 지키고 있는 Charging bull 동상을 본 후 우리는 월스트리트를 따라  걸어가다보면 보이는 트리니티 교회를 두번째 목적지로 삼았다. 뉴욕 여행을 마치고 시카고에 가면 최근 몇년째 브로드웨이 뮤지컬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해밀턴> 보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해밀턴> 미국의 Founding Fathers (미합중국 헌법 제정자들)   명이자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의 생애를 힙합과 재즈, 알앤비  기존의 전통적인 뮤지컬과는 다른 장르의 음악과 안무로 그려낸 작품이다. 트리니티 교회 묘지에는 바로  해밀턴이 잠들어 있다.

사실 해밀턴은 낯선 인물이 아니다. 바로 10달러 지폐의 주인공이란 말씀! 
트리니티 묘지에 안장된 "해밀턴"의 묘소

우리가 방문한 시간에는 트리니티 교회가 예배를 드리는 중이었기 때문에 내부 구경을   없어서 아쉬웠지만, 다행히 묘지는   있었다. 해밀턴이 사망한지 벌써 200년이 넘었음에도, 그의 묘에는 여전히 누군가 놓고  화환과 , 성조기로 가득했다. 그만큼 해밀턴이라는 인물은 현재의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써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아직도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무덤 옆에는 아내 엘리자베스 해밀턴이 묻혀있다. 나도 <해밀턴> 뮤지컬을 보고   알게  사실이지만, 극 중에서 ‘일라이자 불리는 해밀턴의 아내는 고아였던 해밀턴처럼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을 위해 미국 최초의 고아원을 지은 위대한 여성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받는 역사 교육 과정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해밀턴의 무덤을 찾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관광객은 엘리자베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뮤지컬을 보거나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면 해밀턴 못지 않게 감동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를 달리보게  테니, 혹시  글을 읽는 독자  해밀턴의 무덤을 찾는 분이 계시다면 그의 생애  아니라 그의 아내의 생애도    찾아보고 방문해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어쩌다 뉴욕의 기행이 끝났다. 내가 느낀 뉴욕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라고 불리울 만큼 거대한 에너지를 내뿜는 도시였고 그만큼 많은 이들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 도시를 움직이는 연료처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일 만큼 강렬한 인상을 관광객들의 마음에 쏟아낸다. 그러나 뉴욕의 시민들은 기억한다. 도시가 가진 화려함 뒤에 가려진 이 곳에서 일어난 아픔과 상처 그리고 공포와 패닉을... 그리고 이들은 언제나 처럼 이겨내고 있다. 이미 대공황을 버텨냈고 수많은 경제 위기를 벗어나 지금의 모습을 일궈냈으며 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고를 기억하고 그들을 잊지 않은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란걸 나는 이번 뉴욕 여행에서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루카스 매거진 : 자유로운 작가들이 만드는 독립 잡지>
작가 : 반미국인 반한국인 "25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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