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반미국인의 과테말라 여행기] 어쩌다 과테말라 (1편)

생활 정보 이야기/해외 여행 일지

by Aaron martion lucas 2019. 8. 29. 15:24

본문

이 글을 쓰기 위해 3년 넘게 묵혀둔 일기장을 꺼냈다. 펼치기도 전부터 삐죽삐죽 튀어나온 각종 팸플릿과 지도, 입장권 등을 보니 벌써 그 여행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래 지난것도 아닌데 잊고 있었던 장면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혼자 침대맡에 앉아 그때의 흔적들을 훑어보다 내 못난 기억력을 탓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모두 적어두길 정말 잘했다며 곧바로 칭찬을 퍼부었다.

매일 들고 다녀서 헤진 지도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쓸어보면서 더 확고하게 마음을 굳혔다. 이렇게 장롱속에 넣어두기엔 너무 아까운 기억들을 앞으로는 더 구체적으로 남겨야겠다고.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정말 잊혀지기전에 다급하게 기록하는 나의 첫 여행기이다.

내 짤막한 인생 중 가장 후회가 많은 기간이 바로 고등학교때 인데, 여러 이유들 중 여행이 꽤 큰 몫을 차지했다. 미국 중부에서 4년이나 살았으면서 어떻게 한번도 다른 동네 구경해 볼 생각을 못했는지, 비행기만 잠깐 타면 세인트루이스, 뉴욕, 플로리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있는데 말이다. 미련하게도 대학 학자금을 마련 해야한다는 핑계로 혹은 대입 준비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결국 그놈의 대학 때문에 내 용기가 허락한 유일한 여행지는 고작 기차타고 30분이면 갈 수 있는 시카고 뿐이였다. 물론 시카고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 부터 꿈꿔온 진짜 여행이란 훨씬 낯선 곳에 가서 훨씬 신선한 경험을 해보는 것 이었다. 그 나라의 새로운 요소에 충격을 받고 무언가가 각인 되는 그런 경험. 

답답하게 상상만 해오던 내 꿈을 시원하게 이뤄주신 분은 우리 이모였다. 당시 이모는 과테말라의 수도에 위치한 WFP(세계식량계획)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계셨는데 첫 학기가 끝난 겨울, 나를 기꺼이 과테말라로 초대 해주셨다. 10년 가까이 떨어져 있던 이모를 오랜만에 보는 것만으로도 신나는데, 그 장소가 과테말라라니! 머릿 속에 내가 꿈꾸던 여행 바로 그 자체였다. 단연코 내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처음 보는 대학 기말고사 걱정보다 과테말라 갈 생각에 더 들떠서 밤잠 설치던 12월이었다.

, 그럼 우리에게 생소한 과테말라라는 나라는 어떤곳인지 한번 구경해보자.

마야의 숨결이 남겨진 과테말라, 여행전 주의 사항

과테말라의 수도에 위치한 옛 대통령궁 "Palacio Nacional de la Cultura" 

이전까지 내가 과테말라에 대해 아는거라고는 멕시코 남쪽에 있다는 것과 스페인어를 쓴다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난생처음 여행을 위한 사전조사에 들어갔다. 과테말라는 마야문명이 발생한 본거지로,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독자적인 문화가 번성하고 있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저서<총, 균, 쇠>에서 그는 “일반적으로 신세계에서 예술, 천문학 등 여러측면에서 가장 발전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바로 기원후 처음 1000년 동안 열대의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에서 꽃 피었던 고전시대의 마야사회였다”며 유럽인과의 접촉이 있기 전 마야문명이 지닌 가치를 언급했다.

그러나 지금의 과테말라는 번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최근 뉴욕타임즈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현재 과테말라는 사회 정치적으로 불안한 탓에 점점 더 많은 과테말라인들이 부패한 정부로부터 보호 받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나라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예전부터 폭력범죄는 자주 있었지만, 얼마전 선거에서 선출된 예비대통령이 과테말라의 강력한 범죄 조직 중 하나와 긴밀한 협력관계라는것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는 앞으로 과테말라가 더욱 위험한 사회로 추락할 것을 우려하고있다. 따라서 당신이 과테말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반드시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를 당부하고 싶다.

고대 마야인들이 지구의 배꼽이라고 불렀던 "Lake Atitlan" 화산 호수

비록 치안도 정세도 여행자를 배려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그럼에도 우리 같은 여행자들은 주변의 만류도 뿌리치고 고집스럽게 떠난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과테말라는 그에 따른 보상이 충분한 곳이다. 유럽과 고대 마야 문명이 융합되어 있는 건축물들은 허름한듯 예스러운 매력을 자연스럽게 뿜어내고 휴화산이 그리는 능선은 사진을 수백장 찍어도 내 두눈으로 담은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자연경관이다. 밤 길만 조심한다면 낮에 만나는 사람들의 살가운 인사가 기분 좋게 따스한 햇살과 잘 어울린다고 느낀다. 다른데서는 맛보기 힘든 타말과 고기스튜, 투박한 옥수수 토르티야 등 자극적이지 않은 전통 음식도 그립다. 물가가 비교적 저렴하기도 하니 부디 망설이지말고 모두 경험해보길 바란다.

시간이 멈춘 공간 안티구아(Antigua)

과테말라는 마야유적의 보고인 만큼 볼거리가 넘쳐 나지만 나는 그나마 세계사 시간에 배워서 친숙한 스페인 식민시대를 먼저 소개하고 싶다.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한참을 달려야 닿을수 있는 안티구아마을은 도시에서의 위험하고 복잡한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관광지이다. 마을의 본래 이름은 안티구아 과테말라(Antigua Guatemala : ‘옛 과테말라’ 라는 뜻)이며 16세기 초 스페인 식민시대 과테말라의 수도였다. 하필이면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에 수도를 세우는 바람에 여러번의 피해 끝에 결국 1773년대 지진을 계기로 지금의 과테말라시티로 수도를 이전했다. 대부분의주민들은 떠났으나, 남은 몇몇의 사람들로 꾸려진 공동체가 시간이 멈춰버린 듯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곳 유적지를 지키며 지금까지도 살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만큼 비교적 치안도 안전하고 외국인이 많이 방문한다. 그래서인지 관광과 연계한 스페인어 교육프로그램도 유명한데, 한달 이상 홈스테이로 현지인집에서 머물며 스페인어와 과테말라 역사 및 문화를 배우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직접 가보니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맑은날씨가 어학연수 겸 힐링 여행을 하기에 안성맞춤이구나 싶었다.

과거 식민 정부의 아픔은 찾아볼 수 없는 평온한 모습의 안티구아 마을

차가 거의 없는 한적한 거리를 여유롭게 구경하는 관광객들 틈에 섞여있다 보면 잔인하게 토착민을 착취했던 스페인 식민 정부의 수도였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안티구아가 원래부터 평화로웠던 마을처럼 보인다. 이곳의 대부분의 건물은 스페인 사람들이 직접 스페인 스타일로 건축한 1-2층의 낮은 건물들로 주로 따뜻한 계열의 파스텔톤 벽에 자주색 지붕을 얹은 형태이다. 때문에 파란 하늘과의 대비가 선명해서 사진도 잘 나온다. 바닥은 유럽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울퉁불퉁한 벽돌로 깔려있는데 유럽 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잘 알듯, 몇 발짝 걷자 마자 오래 걸으면 발바닥에 쥐가 날수 있겠구나 느낄 수 있다. 안티구아에서는 튼튼한 운동화가 필수다. 첫날은 저녁에 도착한 관계로 많은 것을 볼 수는 없었고, 중심 광장 주변의 건물들 사이로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늦게까지 여는 상점도 없고 간간이 벽에 붙어 있는 작은 전등이 조명의 전부라서 더 운치 있었다.

도시의 알록달록한 불빛이 익숙한 나에게, 안티구아의 어둠은 마치 공연이 시작하기 직전의 설렘을 안겨주었다.

안티구아의 낭만 만큼이나 물론 불편함도 공존한다. 특히 부족한 조명 덕분에 울퉁불퉁 한 길을 저녁에 걸을 때는 휴대폰 전등 어플에 의존해서 나아가기도 했다. 밤에는 과테말라 어디를 가나 위험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우리 말고도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고 확실히 수도에서처럼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것 없으니 꼭 가방을 앞으로 매고 일행과 잘 붙어 다녀야 한다. 가방을 앞으로 매고 걸어다니는건 처음이라 내 모습이 참 우스꽝스럽고 어색했다. 미래의 남자친구랑 여행할 때 만은 다른 방법으로 매거나 도난 방지가방을 사던지 해야지...

그날 밤, 나는 우리가 산책한 길이 전부인 줄 알고 안티구아가 아주 작은 마을이라 생각 했다. 초보 여행자의 흔한 실수로, 지도를 보아도 거리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아주 여유로운 주말이 되겠군’ 하며 잠들었는데, 다음날 해가 뜨고 다시 만난 안티구아는 몸집이 몇배로 불어나 있었다...

(어쩌다 과테말라 2편에 계속)

 

<LUCAS MAGAZINE WRITER - 아름답고 자유로운 작가가 있는 곳>
작가 : 반미국인 반한국인 "252636"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