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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깊은 강 : 저마다의 슬픔을 위한 모두의 강

문화 & 예술 이야기/도서 리뷰

by Aaron martion lucas 2019. 9. 1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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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짊어지고

인도가 궁금했다. 정확히 말하면 13억 인구를 바탕으로 한 급속한 발전상보다 예전부터 여행자들이 꾸준히 인도를 찾는 이유가 궁금했다. 류시화 시인의 체험이 담긴 <지구별 여행자>를 읽고 라씨(인도의 대표적인 발표 음료)의 맛을 상상했을 때부터 가진 궁금증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무엇을 찾아 인도로 갈까. 그리고 인도에서 그것을 찾았을까.

작품의 주무대인 순례자의 성지 인도 갠지스 강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소설 <깊은 강>의 등장 인물들도 인도로 간다. 작품의 주 무대는 갠지스강이다. 강의 유속이 느려지는 힌두교 성지 바라나시에는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매일 인산인해를 이룬다. 책의 등장인물 이소베, 미쓰코, 누마다, 기구치, 그리고 오쓰에게도 이곳을 찾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침묵>에서 프랑스 선교사의 고뇌를 통해 일본 문화와 기독교의 갈등, 종교와 신의 의미를 다뤘던 작가는 왜 인도를 배경으로 삼았을까. 작품에서 인도와 갠지스강이 갖는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주요 인물들의 여정을 차근차근 따라가야 한다. 무엇보다 미쓰코와 오쓰의 관계, 둘의 이야기가 이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미쓰코는 일본을 휩쓸었던 학생 운동의 열기가 식은 무렵 대학생이 되어 일상의 모든 것에 공허를 느끼는 인물이다. 그가 공허감을 잊기 위해 이용했던 대상 중 하나가 오쓰다. 오쓰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타인(미쓰코)의 시선으로만 설명되는 인물이다. 미쓰코의 행동에 상처를 받은 것을 계기로 신부의 길에 들어서고, 결국 바라나시에서 가난하고 아픈 순례자를 화장터까지 업어주는 일을 하게 된다.

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으니, 비참하고 초라하도다

오쓰의 삶은 작가 엔도 슈사쿠의 종교관을 오롯이 보여준다. 소위 모태신앙으로 물려받은 종교를 마음속에 받아들이지도, 놓지도 못하고 갈등하던 그는 수도원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는다.

미안합니다. 그 단어가 싫다면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도 상관없습니다. 토마토이건 양파건 다 좋습니다.”

그럼 당신한테 양파란 뭔가요? 예전엔 그저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그랬잖아요. 신은 존재하느냐고 누군가 당신한테 물었을 때.”

미안합니다. 솔직히 그 무렵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나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말해 봐요.”

신은 존재라기보다 손길입니다. 양파는 사랑을 베푸는 덩어리입니다.” (p.94)

불교에도 힌두교에도 신은 존재한다는 범신론에 가까운 그의 사상은 동료와 스승의 비판을 받는다. 결국 그는 가장 비참한 곳에서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봉사한다. 그 모습은 힌두교의 여신 차문디와 오버랩된다. 차문디는 뱀과 전갈에 뜯기면서 말라버린 젖을 주는, 비참한 자들의 어머니다.

동서양의 종교/문화를 소재로 한 일본 현대 소설계의 거장 "엔도 슈사쿠" 

종교와 신은 엔도 슈사쿠의 문학세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주제다. 타의로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서양에서 유래한 기독교 정신과 문화에 완벽히 융화될 수 없었던 작가의 고민이 오쓰라는 인물에 녹아있다. 오쓰뿐만 아니라 각 캐릭터에는 작가의 삶이 조금씩 반영되었다. 중국에서 보낸 유년시절, 반려동물과의 이별, 부모님의 이혼, 불문학 공부 등 근대 일본에서 성장해 기독교 신자이자 지식인으로 살았던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오쓰를 비롯한 책 속의 모든 인물들은 크고 작은 상실을 경험했다. 아내, 전우, 반려동물, 삶의 목표 등을 잃고 인도로 와서 갠지스강을 만났다. 오쓰의 삶에 의문과 냉소를 거두지 않았던 미쓰코조차 강 건너편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슬픔을 씻어주는 강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당시 인도의 어지러운 국내 정세처럼 갠지스강도 이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온갖 인간 군상이 몰려들어 혼란스럽고 지저분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오쓰가 있다. 그는 마지막 안식조차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현실의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희망이다.

인도로 떠나면 잃어버린 무엇, 또는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무언가를 찾게 될까. 다녀오기 전까지 답을 찾지 못할 질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적어도 우리에게 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피로와 슬픔을 씻을 수 있는 저마다의 강. 오쓰가 자신이 믿는 신을 토마토나 양파로 불러도 문제없다고 한 것처럼, 그 강은 어디에 있든, 어떤 이름이든 상관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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