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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지금은 이 단어를 참 예쁘다고 느끼게 되었다. 별 의미가 없던 단어가 이제 내게는 하나의 세상이 되어, 그 속에는 달콤함도 씁쓸함도 품은 이야기 보따리가 되었다. 그 단어 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다. 내가 이 단어를, 의도치는 않게도, 사랑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렇듯 집사가 된다는 것은 결국 고양이라는 존재를 사랑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나도 처음부터 고양이 집사는 아니었다. 어떤 가게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그 가게 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파양하였다. 결국 그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 고양이를 분양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무료로, 책임비도 받지 않은 채 그냥 갈 곳 없는 녀석을 부디 데려가만 달라 요청 한 것이다. 나와 내 남자친구는 우연히 그 글을 봤고, 함께 마음이 동했다. 사진 속 주인공은 5개월된 검장 고양이로 하얀 발과 턱이 참 귀여웠다. 작은 신사 같았다. 우리는 그때 하얀 양말을 신은 것 같은 그 고양이를 양말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글엔 아무도 양말이를 데려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딱 하루만, 하루만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양말이가 아무데도 입양을 가지 못한다면 데려오기로 마음 먹었었다.
결국 하루가 지났다. 5개월짜리 코리안숏헤어 수컷 양말이는 여전히 갈 곳이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별 대책 없이 1시간거리를 운전해 가서 양말이를 데리고왔고, 다이소에서 산 고양이 장난감 두어개, 작은 이동장 하나와 함께 우리집에 버려진 작은 고양이 "구루"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집 고양이 구루가 처음 내게 왔을 때, 우리는 정말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하물며 고양이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항상 모든 것이 새로웠다. 예를 들어 당시 어린 구루는 매일 새벽 5시가 되면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발로 밟고 지나다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큰소리로 아옹아옹 울고 그래도 일어나지 않으면 나를 살짝 깨물기 까지 했다. 그런 행위는 내가 일어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사실 그건 밥을 달라는 뜻이었다. 그때 구루는 그렇게 나를 깨우지 않으면 내가 밥을 주지 않을 것처럼 맹렬하게 나를 깨웠다. 우리는 전혀 친하지 않았고, 서로 이해하기도 힘들었으며 대화도 통하지 않는 그런 관계였다.
처음에 나는 구루가 밥을 달라고 할 때마다 밥을 주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구루는 밥을 달라 보챘고 그대로 주자 곧 살이 엄청 찌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번 심장사상충 약을 받을 겸 간단한 검진을 받으러 동물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은 왜 이렇게 살이 쪘냐고 하시며 깜짝 놀랐다. 내가 보기에도 무섭게 살이 붙어있었다. 그 때부터 제한급식을 시작했다. "고양이를 부탁해" 같은 프로그램도 찾아보고 카페나 블로그에서 정보도 검색하고 어려운 것은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수시로 물었다. 그야말로 공부였다.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온 이 고양이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낯선 고양이였고 우리는 가족이라기엔 너무 먼 사이였다. 내가 고양이 키우는 걸 너무 쉽게 보았나 후회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때때로 나를 의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사랑스러워, 그 낯선 고양이를 감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종일 집에 있는 사람이었기에 우리는 좀 더 빨리 서로에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특히 제한급식을 시작하고 나서 밥을 보채는 행동이 심각해져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다. 먹는 양이 줄자 배가 고팠는지 나를 더 일찍, 새벽 4시 반에 깨우기 시작했다. 그것도 더 맹렬하게 깨웠다. 그래도 애써 무시하자 비닐을 뜯는 이식증을 보였다. 그때마다 눈에 보이는 비닐을 모두 치웠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났다. 다행스럽게도 구루는 조금씩 살이 빠졌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마음에 여유도 생겼는지 더 이상 밥을 보채지 않게 되었고, 밤이 되면 나와 함께 잠들어 아침이면 나와 함께 일어났다. 나를 볼 때마다 좋아한다며 이마 박치기를 하고 꼬리를 높게 들고 총총총 뛰어와 다리에 볼을 부볐다. 구루가 나를 믿기 시작한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나는 밥을 주고, 함께 놀고, 하루종일 함께 있으리라는 걸 이녀석은 알았다. 그리고 나도 구루가 하는 행동들의 의미를 천천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엔 영문을 모르던 일들이 하나씩 이해할 수 있는 일들로 변해갔다. 나는 정말 고양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동안 구루가 좋아하는 것은 무언인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밥이나 간식은 뭐든 잘 먹지만 내가 삶아준 닭 가슴살은 싫은 고양이.
사람 밥 냄새를 맡으면 싫어하는 고양이.
배는 만지면 안 되지만 턱 만지는 건 너무 좋아하는 고양이.
야옹야옹이 아니라 애오애오하고 우는 고양이.
그 고양이는 이제 그냥 낯선 고양이가 아니라 나의 구루가 된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는 이제 돌이킬 수 없이 가족이 되어버렸다고.
나처럼 준비 없이 고양이를 입양하는 일은 고양이와 사람, 서로에게 큰 불행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운이 좋아 환경이 따라줘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구루가 아플 때마다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는 게 부담이었다면? 구루가 식성이 까다로워서 먹는 걸 주의해야 하는 고양이였다면? 구루가 나에게 마음을 빨리 열지 못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험난하고 괴로운 길을 지나야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은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그냥 귀여운 고양이가 아니라 어떤 낯선 고양이를 사랑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건 어떤 낯선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라고.
가능하다면 입양하기 전 한번 더 심사숙고해보길 바란다.
<LUCAS MAGAZINE WRITER - 아름답고 자유로운 작가가 있는 곳>
작가 : "구루 집사"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guruis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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