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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지 탐방] 강산무진(江山無盡), 영주 부석사의 가을

생활 정보 이야기/국내 여행 일지

by Aaron martion lucas 2019. 10. 1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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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글을 읽다.

어느 해인가 겨울이었다. ‘남자그녀가 부석사로 떠나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면 능선 뒤의 능선 또 능선 뒤의 능선이 펼쳐져 그 의젓한 아름다움을 보고 오면 한 계절은 사람들 속에서 시달릴 힘이 생긴다고 누군가 일러 주었다. 그것만으로도남자그녀에게는 여행의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신경숙 「부석사」 『2001년도 제25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2001, 35)

남동으로 내닫던 백두대간은 태백산에 이르러 남서로 허리를 돌리고 지리산을 향한다. 태백과 소백이 나뉘는 사이의 봉황산 중턱에 1300년 동안 영주 부석사는 자리하고 있다. 중국 종남산의 지엄에게 화엄학을 배우고 돌아온 의상은 '고구려의 먼지나 백제의 바람이 미치지 못하고, 말이나 소도 접근할 수 없는 곳'을 찾아 여기야말로 법륜의 수레바퀴를 굴릴 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발길이 닿기 쉽지 않은 국토의 오지를 찾아가는 길은 이미 고해의 산맥을 넘는 일이다.

유홍준 선생은 남한의 5대 명찰(名刹)을 논하면서, '몇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이라고 부석사의 정경을 그렸다. 정말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가을날이다. 순흥 들판의 살 오른 벼 이삭은 잇닿아 누런 물결을 이루고, 비탈밭의 빨간 능금은 힘겨운 가지 위에서 막바지 가을 햇살을 받고 있다.

부석사 가로수길
부석사로 오르는 은행나무 가로수길 ▶ 부석사로 오르는 비탈길은 곧 쏟아질 것 같은 은행잎이 하나 가득이다. 적당한 경사면의 쾌적한 순롓길로 멀리 일주문이 있어 거리를 가늠케 한다.
부석사 당간지주
부석사 당간지주 ▶ 곧게 뻗어오르면서 위쪽이 약간 좁아져 선의 긴장과 멋이 함께 살아난다.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약간씩 좁혀간 체감률, 끝마무리를 꽃잎처럼 공글린 섬세성, 몸체에 돋을새김의 띠를 설정하여 수직의 상승감을 유도한 조형적 계산으로 우리나라에 있는 수많은 당간지주 중 가장 늘씬한 몸매의 세련미를 보여주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부석사 일주문으로 오르는 길은 곧 쏟아질 것 같은 은행잎이 하나 가득이다. 비탈길에서 전해지는 다리의 긴장은 그 동안 끌고 온 시간의 무게를 자각케 한다. 내용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밤과 낮을 짊어지고 어디를 향해 걷고 있었던 것일까. 천왕문 아래 돌계단에 앉아 숨을 돌린다. 갖가지 모양의 자연석이 이 맞춰 잘 짜여진 돌축대가 무질서의 질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부석사 돌축대
부석사 돌축대 ▶ 제멋대로 생긴 크고 작은 자연석의 갖가지 형태들을 다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를 맞추어 쌓았다.갖가지 모양의 자연석으로 잘 짜인 돌축대는 무질서의 질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제 심호흡을 크게 하고 키높은 돌계단을 올라 천왕문을 지나면, 부석사 경내가 액자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이 깊은 산 속에 이렇게 정연하고 장쾌한 곳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경탄스럽다. 봉황산의 경사진 산자락에 일정한 각도로 비스듬히 비켜서 있는 건축물들은 수평과 수직의 절묘한 입체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다.

부석사 경내
부석사 경내 ▶ 봉황산의 경사진 산자락에 일정한 각도로 비스듬히 비켜 있는 건축물들은 수평과 수직의 절묘한 입체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안양루와 무량수전
안양루와 무량수전

부석사는 건축가들이 주저 없이 엄지를 치켜세우는가장 잘 지은 고건축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이다. 건축적 사고가 풍부하고 건축적 짜임새가 충실하다는 뜻일 것이다. 천왕문에서 요사채까지 세 단, 범종루까지 세 단, 안양루까지 세 단의 돌축대로 나뉘어진 가람배치는 극락세계 9품 만다라를 건축적 구조로 구현한 것이다. 왼쪽 방향으로 틀면서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길은 아미타불의 정토에 이르는 길목을 한 계단 한 계단 끌어올리는 고양감을 연출한다.

일주문에서 무량수전에 이르는 길은 이 세상의 변방을 아득히 우회하는 듯한 공간감의 확장을 느끼게 한다. 서방정토는 굽이굽이 돌아서 찾아가는 곳이라는 느낌을 그 길은 구현하고 있다. (중략) 서방정토는 인간의 현실 속에서 뚜렷하고도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그 낙원에 이르는 길은 아득히 우원(迂遠)하다는 종교적 경건성을 부석사의 길은 공간 안에서 드러내 보이고 있다.

(
김훈, 『자전거 여행』, 생각의나무 2006, 168-169)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안양루 누각 밑을 거쳐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오랜 세월 늠름한 기품과 조용한 멋을 간직해 온 무량수전의 품에 안긴다. 무량수전의 기둥은 곡선이 미려한 배흘림기둥인데, 그 탄력감이 대단해 훤칠한 느낌을 준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면 내려다보이는 소백 연봉의 장쾌한 경관이 장관이다.

저 멀리 산은 멀어지면서 소백산맥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이 웅대한 스케일, 소백산맥 전체를 무량수전의 앞마당인 것처럼 끌어안은 것이다. 이것은 현세에서 감지할 수 있는 극락의 장엄인지도 모른다. 

(
유홍준 같은책, 99-100면)

부석
부석 ▶ 불전 뒤에 한 큰 바위가 가로질러 서 있고 그 위에 또 하나의 큰 돌이 내려덮여 있다. 언뜻 보아 위아래가 서로 이어붙은 것 같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두 돌 사이가 서로 붙어 있지 않고 약간의 틈이 있다. 노끈을 넣어보면 거침없이 드나들어 비로소 그것이 뜬 돌인 줄 알 수 있다. 절은 이것으로써 이름을 얻었는데 그 이치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부석사 삼층석탑
삼층석탑 ▶ 무량수전에서 조사당을 향하면 그 위치설정이 아리송한 언덕 위의 삼층석탑을 지나게 된다. 아마도 무량수전의 아미타여래상이 특이하게도 남향이 아닌 서향을 하고 있으니 부처님이 바라보는 방향과 같다는 사실로써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부석사 경내에는 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 삼층석탑(보물 제249), 당간지주(보물 제255), 고려시대 유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 조사당(국보 제19), 소조여래좌상(국보45), 조사당 벽화(국보 제46), 고려각판(보물735)이 있다. 한 곳 한 곳을 밟아가다 보면 의상과 선묘의 사랑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부석사 범종루,안양루
범종루,안양루 ▶ 이 위에 오르면 저 멀리 산은 멀어지면서 소백산맥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해는 어느새 기울고 있다. 안양루에서 소백산맥 준령들의 능선을 바라보았다. 무한강산이다. 이곳까지 꾸역꾸역 짊어지고 온 무거운 시간의 추가 스르르 풀려 바람에 날려가는 것을 보았다. 가을, 한 계절을 시달린 다리는 이제 또 하나의 계절을 버틸 힘을 얻고 있었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도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루,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도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1994, 78)

영주 부석사에 가기 전 읽고 가면 좋은 글

「영주 부석사」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창비 1994, 2011
「고해 속의 무한강산」 - 김훈 『자전거 여행』 생각의나무 2000, 2006
「부석사 무량수전」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1994
「부석사」 - 신경숙 「부석사」 『2001년 제25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2001

영주 부석사 가는 길

 

 

<루카스 매거진 : 자유로운 작가들이 만드는 독립 잡지>
작가 : 문학적 저널리스트 "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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