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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의 여파, 그리고 레바논 헤즈볼라의 한계

국제 & 사회 이야기/국제 사회 문제

by Aaron martion lucas 2019. 10. 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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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아랍의 봄’, 종파주의적 분쟁과 강대국들 사이의 대리전으로 변질되다

2011년 초, 시리아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는 분명히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시위대에 참여한 시민들 중 그 누구도 그 여파가 국제적 대리전의 성격을 지닌 내전으로 번지리라는 것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집권당인 바트당과 군의 지도자로서 10년 넘게 시리아를 통치하고 있었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0년 12월 아랍을 뒤흔든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 그것이 시리아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제 우리는 시리아 내전을 통해 시리아 내 종파간 내전 뿐 아니라 주변의 지역 패권 국가들 및 강대국들 사이의 대리전을 목격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서로 수니파 이슬람과 시아파 이슬람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사이의 대리전인 동시에, 서방블록의 막강한 후원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과 그 반대편에 있는 이란 사이의 대리전이며, 그리고 오래전부터 중동 지역의 헤게모니를 두고 다투어왔던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대리전이기도 하다. 여기에 ‘신 오토만 제국’의 부활을 공공연히 표명해왔던 터키까지 가세했다. 게다가 터키, 아랍, 이란 지역에서 소수민족으로서 분투해왔던 쿠르드족 문제가 겹치면서 시리아 내전의 양상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ISIL이라는 괴물이 점차 쇠퇴해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애초부터 ISIL의 문제는 시리아 내전의 산물이다. 시리아 내전을 종결짓지 않는다면 ISIL과 같은 괴물들을 수백마리 때려잡는다고 한들 소용이 없을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시리아 내전의 피해 규모는 레바논 내전을 훌쩍 뛰어넘는다. 아직 현재 진행형인 이 전쟁은 끝이 나더라도 중동 지역 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 엄청난 상처와 과제들을 남길 것이다. 현 시점에서 시리아 내전의 의미를 역사적 흐름에서 고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내전이 종결되고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시리아 내전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시리아 내전에는 다양한 종파, 정치 파벌, 민족, 강대국들의 상이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시리아 내전의 배경과 시리아 내전이 레바논에 미친 여파들
: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기

레바논은 시리아와 오래전부터 서로 역사적, 문화적으로 깊은 관계를 가져왔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리아 내전의 여파가 레바논과 레바논 헤즈볼라에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시리아 내전이 레바논에 미친 여파를 추적하기 위해서 우리는 잠시 아랍 지역의 근현대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레바논과 시리아 사이의 국경은 1920년대 프랑스의 식민 통치의 산물이다. 프랑스는 해당 지역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치하기를 바랬다. 오늘날의 레바논과 시리아 사이의 국경은 그렇게 자신들의 의사가 아닌서방 국가에 의해 탄생했다. 오늘날에도 레바논과 시리아에는 국경 너머에 친족들을 지닌 주민들이 적지 않으며,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시리아는 레바논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파 및 종교가 공존해왔다. 인구 대비로 따지면 수니파 무슬림이 다수지만 여러 시아파 이슬람 종파 신도들과 그리스 정교회를 비롯한 그리스도교도들의 수도 적지 않다. 시리아 정부가 명목상으로 세속주의와 아랍 민족주의를 공식 이데올로기로 내세워 왔던 것은 이러한 종파적 배경에 기인한다. 실제로 시리아가 다른 수니파 이슬람권 국가들에 비해서 세속주의 경향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시리아 역시 반미/반이스라엘의 입장을 취했고, 종종 레바논을 두고 이스라엘과 주도권 다툼을 벌여왔다.

그러던 와중에 민주화와 알 아사드 가문의 족벌 체제 종식을 요구하는 시리아 시민들의 시위가 시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유혈진압으로 대응하면서 시리아 내전이 발발했다. (사실 이 두 사건의 발발 시점을 구분하기란 현재로선 쉽지 않다) 알 아사드 정권의 유혈진압은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다른 지역과 비교해보더라도 두드러지게 폭압적이었음이 분명하다. 시위대 내에서 사상자들이 계속 속출했다. 곧 자기 방어를 위해 무장 저항을 택하는 시민들이 나타났다. 주요 미디어에서는 이들을 뭉뚱그려 반군, 내지는 반정부군으로 지칭했다. 그런데 시민 시위대의 수호를 자처하는 ‘자유 시리아군(Free Syrian Army, 해외에서는 줄여서 FSA라고도 함)’을 비롯한 반정부군에 코란과 엄격한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기초한 신정 체제 부활을 꿈꾸는 각국의 이슬람 원리주의/극단주의 세력(이들 중 상당수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의 지원을 받았다)이 스며들면서 내전은 점차 종파간 전쟁으로 변질되어 갔다. 여기에 알 아사드 부자의 종파적 배경으로 억눌려 왔던 수니파 무슬림들의 분노도 종파주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수니파 이슬람이 경전의 권위를 중시하여, 보다 엄격한 계율 준수를 강조하는 반면, 시아파 이슬람은 경전의 권위를 중시하면서도 신비주의 영성의 영향을 받았다.
(아래 "레바논에는 언제쯤 백향목 향기가 뒤덮일 수 있는가" 포스팅 참조)
 

레바논에는 언제쯤 백향목 향기가 뒤덮일 수 있는가

솔로몬의 기도 <구약성서>를 읽다 보면 솔로몬(아랍식으로는 술레이만) 왕이 왕국의 위엄과 유일신 야훼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으리으리한 규모의 성전을 건축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리고 솔로몬 왕은 성전이..

apiece-korea.tistory.com

지금이야 자유 시리아군과 적대 단체이지만, ISIL의 전신인 ‘이라크 이슬람 국가’에서 기원했고, 한 때 알 카에다와도 제휴 관계였던 악명 높은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단체 ‘알 누스라 전선’이 이때는 자유 시리아군과 동맹 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유 시리아군을 비롯하여 반정부군 내에는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극단주의 무장 세력들이 잔존해 있다. 이들은 시아파 무슬림들에 대해서 ISIL만큼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지만, 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 있어 시아파 무슬림들의 수호를 자처하는 레바논 헤즈볼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이라는 ‘이교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박멸해야 할 ‘이단자들’에 불과하다.

민주화를 위한 내전이 각 종파간의 전쟁으로 번지면서 시리아 내전은 2011년부터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시리아의 불안이 격화되면서 시리아 사회에서 친정부 여론 또한 나타났다는 점이다. 반정부 시위 뿐 아니라 친정부 시위 또한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들을 모두 알 아사드 정권의 사주를 받은 이들로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될 것이다. 소수 시아파 종파 커뮤니티나 그리스도교 커뮤니티 사이에서의 불안감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알 아사드 정권의 붕괴로 급진적 수니파 이슬람주의 정권이 도래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불똥이 레바논으로 튀었다. 레바논 사회는 다시 종파간 분열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전처럼 무슬림들과 그리스도교도들이 아니라, 수니파 무슬림들과 시아파 무슬림들 사이의 갈등이었다. 수니파 무슬림들 중에는 반정부군을 옹호하고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많았고, 시아파 무슬림들은 많은 경우 친 시리아 정부의 입장을 취하거나 친정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반정부군을 경계했다. 많은 레바논의 시아파 무슬림 주민들은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가 발흥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마론파 가톨릭 교도들과 그리스 정교회 교도들을 비롯한 레바논의 그리스도교 커뮤니티는 딱히 종파에 따른 분쟁이 나타나지 않고 반정부/친정부로 나뉘었다.

시리아 내전의 여파가 레바논 국내까지 퍼지면서 수백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2017 8월말에 (레바논 국내에서 서로 앙숙이었던) 헤즈볼라와 레바논군이 ISIL 및 알 카에다와 연계된 무장단체들을 격퇴시키면서 시리아 내전의 여파는 레바논에서 더 크게 번지지 않았다. 그러나 불안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미 레바논에는 20만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들이 몰려들었고, 레바논 헤즈볼라가 이미 시리아 정부와 제휴하여 시리아 반군과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산 나스랄라의 헤즈볼라는 왜 시리아 군부정권을 지원할까?

시리아 반군과 싸우는 헤즈볼라 전사들, 시리아 반군이 주장하는 민주화 혁명의 의미는 퇴색되어 버렸다.

레바논의 시아파 무슬림들은 이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수니파 이슬람 왕정 국가들에서 시아파 무슬림들이 탄압받아온 역사를 알고 있었기에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ISIL이 점령했던 지역에서 시아파 무슬림들에 대한 극악무도한 학살과 전쟁범죄가 보고되었다. 게다가 내전과 이스라엘의 침략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가장 크게 입었던 이들이기도 하다. 여전히 종파주의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있는 레바논 사회에서 이는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아랍의 봄’에서 이집트, 튀니지, 바레인, 리비아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 지지를 표명했던 헤즈볼라의 하산 나스랄라가 시리아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레바논 헤즈볼라의 이런 태도는 순전히 시아파 이슬람의 맹주국을 자처하는 이란의 후원과 시리아와의 오랜 연계만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레바논 내전 이래로 시아파 무슬림들을 대변하고, 더 나아가 미국과 이스라엘이라는 막강한 외세의 침입을 막아내어 그리스도교도, 드루즈파, 무슬림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레바논을 건설하겠다고 공언해온 헤즈볼라로서는 자신들의 오랜 지지 기반인 시아파 무슬림과 적지않은 그리스도교도 주민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하산 나스랄라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투쟁”을 논하고 “시리아가 미국, 이스라엘, 타크피리*들의 손에 넘어가면, 우리 지역의 민중들은 암흑의 시대로 빠져들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분명히 이중잣대요, 침소봉대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지만 국제정치, 종파간 갈등의 현실적 맥락에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타크피리 : 이슬람에서 배교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보통 무슬림들이 극단주의/원리주의 성향을 지닌 다른 무슬림들을 부르는 멸칭으로 종종 이용된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레바논 헤즈볼라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헤즈볼라가 현 시점에서 한계와 문제를 드러낸 것은 서방 세계의 주류 미디어들이 보도하는 것처럼 이들이 순전히 위험한 테러리스트들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요, 이슬람 원리주의자라서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다. 헤즈볼라와 하산 나스랄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과 민중적 단결을 외치며 레바논에서 무슬림들과 그리스도교도들이 화해와 평화 공존으로 나아가는 데 공헌했지만, 정작 이슬람 내의 종파주의의 문제는 극복하지 못했다.

헤즈볼라의 이 같은 한계와 모순은 레바논과 시리아 근현대사의 모순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제 국제사회가 나설 때가 되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참여는 과거처럼 강대국의 이해가 반영된 수직적 개입이 아니라, 현지의 민중들의 주권과 자결권, 그리고 평등한 연대를 지향하는 여러 나라들의 시민 사회의 합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시리아와 레바논을 비롯한 중동 지역의 평화 정착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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