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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아랍 국가를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시각과 레바논의 전근대적 종파주의 문제점

국제 & 사회 이야기/국제 사회 문제

by Aaron martion lucas 2019. 9. 1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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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

아랍/이슬람 문화를 전근대적이고 정체되어 있는 문화권으로 보는 고정된 시각은 서구 사회에서 이미 뿌리깊게 박힌 고정관념 중 하나이다. 어느 정도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이라고 간주되는 논객들 중에서 조차 이러한 생각을 지닌 이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인 빌 마허는 자신의 공격적인 이슬람 비판(사실 그는 이슬람 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비판적이기는 하다)을 방어하면서, “서구인들이 믿는 가치를 이슬람 세계는 믿지 않는다”고 언급함으로써 자신은 “그러한 가치들을 믿는 사람”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리처드 도킨스와 샘 해리스처럼 이른바 ‘신 무신론(New atheism)’으로 지칭되는 급진적인 무신론 학자들 역시 이와 비슷한 견해를 공유하고 있다.

이슬람교 비판론자 "빌 하머" / 신 무신론 주의자 "리처드 도킨스" & "샘 해리스"

그러나 특정 종교(그 중에서도 특히 아브라함계 일신교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를 비판하거나 심지어 반대하는 것까지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견해로서 존중하고 경청할 수는 있지만, 그 비판이나 반대가 역사적인 맥락을 간과하거나 식민주의적인 사관을 답습한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비판이나 정당한 반대가 아니라 특정한 문화권에 대한 차별일 뿐이다. 더군다나 앞서 언급한 세 사람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영향력을 획득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발언이 지니는 사회정치적 함의를 그리 크게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이 사람들을 ‘인종주의자’라거나 ‘이슬람 혐오자(Islamophobic)’라고 성급하게 딱지를 붙일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될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권력과 결부된 종교 이데올로기가 확산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증오를 부추기는 기제로 작동하는 현실을 우려했을 것이다. 특히나 금기에 얽매이지 않는 학문 탐구나 문화 활동을 상식으로 삼아온 이 사람들에게 이슬람 등을 비롯한 아브라함계 일신교에서 나타나는 종교 근본주의는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으로 느꼈음직도 하다. 그렇기에 이들의 비판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종교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상당 부분 경청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근대사를 돌이켜 보았을 때 현대 문명 사회에서 종교 근본주의가 판을 치고,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에 서방 국가들이 일조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종교 비판과 반대는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들이 발을 딛고 있는 서구 사회와 정치적 현실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일머니와 무기거래를 바탕으로 미국과 강력한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이 운전을 하는 것조차 국제 토픽이 될 만큼 반민주적인 전제 군주 국가 중 하나이다. 그런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의 동반자 관계를 바탕으로 아랍권에서 문화적, 정치적 헤게모니를 행사해왔다. 때로는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말이다. 하지만 정작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친소련 공산주의자들을 소탕한다는 명목하에 지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무장 조직’들은 나중에 아랍권 뿐 아니라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게 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 무장대원을 지원한 사우디의 갑부들 중에는 모든 미국인들의 공적이 되는 오사마 빈 라덴도 있었다.

미국이 지원한 무장 조직은 결국 미국을 향한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이처럼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등의 서방 강대국들의 대외 정책은 민주주의가 아닌, 철저한 자국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에 기초해 왔다. 사우디를 비롯한 수니파 오일 부국들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인권 탄압이 자행되고 테러리스트가 양산되는 것에는 서방 강대국들에게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

레바논의 종파간 공직 배분 정치 시스템이 지닌 문제점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가보자. 레바논은 근대 이후로 이미 제국주의 지배에 대한 민중적 투쟁,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적 투쟁의 역사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정작 이를 뒷받침해야 할 정치 시스템은 여전히 전근대적이다. 이른바 종파간 화합과 이해의 균형을 도모한다는 명목 아래, 대통령은 마론파 가톨릭 그리스도교도, 국무총리는 수니파 무슬림,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이라는 것이 원칙이다. 명목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인구 내 비중을 바탕으로 나라의 일꾼인 정치가들을 뽑는다는 것은 굉장히 비민주적인 시스템이다. 한 번 생각해보라. 우리나라가 종파간 화합을 도모한다는 명목 하에 대통령은 (개신교, 가톨릭 다 포함해서) 그리스도교도, 국무총리는 불교, 국회의장을 무종교인으로 뽑는다고 가정한다면,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인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정작 국정 운영에 필요한 유능하고 청렴한 정치인이 그리스도교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전에 배제된다면? 이는 또한 이슬람, 원불교, 천도교 등의 소수 종교를 지닌 사람이 피선거권이나 공직자 선출에 있어서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앞서 언급된 세 집단들 사이에서도 차별과 역차별 문제가 불거져 나올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시스템은 시대에 따른 종교 인구의 유동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가령 산업화 시대인 1960~1970년대에는 ‘미국’이라는 문화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던 개신교가 당대 사회의 반공주의적 흐름이 맞물려 교세가 급증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대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잡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회경제적 중산층이 사회의 주류가 되었던 1990~2000년대에는 다소 온건한 이미지를 지닌 로마 가톨릭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러한 종교 인구의 유동성이 발생한다면 기존에 있는 정치 시스템을 통째로 바꿔야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레바논은 한국이나 서구권 국가들과는 다르지 않느냐고? 그러한 시각 자체가 바로 아랍/이슬람권을 타자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아랍/이슬람권은 서구처럼 근대적 민주주의가 알맞지 않다고 보는 서구의 식민주의자들이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견해와 일치한다. 레바논 근현대사에 나타난 종파간의 분열과 전쟁은 기형적이고 인위적인 종파간 안배 시스템이 낳은 결과물이다. 2000년대 이래로 레바논에서는 정치 시스템과 사회문화 부문에서 세속주의적 원칙의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2010 4월에는 베이루트 순교자 광장에서 무려 7만명의 레바논 시민들이 모였다. 이들은 레바논까지 확장을 꾀하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극단주의의 확대를 우려하며 종파주의에 기반한 정치 시스템의 종식과 세속주의적 원칙의 확대를 요구했다.

정치 개혁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온 레바논 시민들

이러한 경향은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를 자처하는 이스라엘과 비교해 보더라도 몹시 고무적이다. 그러나 서방의 주류 언론은 레바논 시민 사회의 이 역동성을 잘 주목하지 않는다. 레바논이 탑 토픽이 되는 것은 언제나 '테러', '헤즈볼라', '이스라엘'과 결부되었을 때이다. (사실 헤즈볼라가 의회에 진입한 것도 근대 민주주의의 기초인 선거를 통해서였다. 게릴라 전략으로 출발한 헤즈볼라가 레바논에서 정당이자 사회복지 조직으로 안착한 것도 기본적인 시민 사회의 토양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레바논의 종파간 안배 시스템이 프랑스로부터의 독립 이후 나타난 레바논 사회의 모순 및 변화와 부정적인 방향으로 맞물려 나타났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 레바논 내전과 이스라엘의 침략이라는 비극의 씨앗은 1943, 종파 인구 구성에 따른 인위적인 공직 배분 정책이 제시된 '국민합의(National Pact)'가 나오면서 이미 그 싹이 트고 있었다.

식민주의 잔재, 레바논의 국민합의가 만들어낸 레바논의 현재 모습

그리스도교도들, 그 중에서도 특히 마론파 가톨릭 교도들은 대체로 사회경제적으로 중산층 이상을 차지하며,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서방에 대해서 친화적이었다. 이들은 근대 이래로 자신의 레바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아랍적 정체성과 결부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레바논의 그리스 정교회 공동체는 예외. 이들은 서방과 이슬람 세계 사이의 중간자적 위치에 있었으며, 아랍 민족주의,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반면에 무슬림 공동체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속했으며, 출산율도 높았다. 많은 통계들에서 이미 시아파 무슬림의 인구는 마론파 가톨릭의 인구를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다. 하지만 바논 당국에서는 '종파간 긴장'을 피한다는 명목하에 정확한 인구통계 수치를 제시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레바논은 지리정치적으로 미국 등의 서방 국가들, 수니파 아랍권 산유 부국들, 이스라엘, 시리아 등의 외세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곳이었다레바논의 국민합의는 이런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약소국의 주권과 존엄을 지키고 국내의 상이한 이해관계로 인한 갈등을 조정하기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은 제도였고, 그 자체로도 식민주의의 잔재였다. 결국 아랍 민족주의의 발흥 가운데 미국의 이해와 아랍 민족주의의 이해가 충돌하여'1958년 레바논 위기'가 발발했고, 1975년에서 1990년에 이르기까지 레바논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까지 큰 상처*를 남긴 레바논 내전이 발발했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1982년 레바논을 침략했다. 이 때 바로 헤즈볼라가 발흥했다.

*후속편에서 다루겠지만 이스라엘 건국과 제3차 중동전쟁으로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 중 수십만명이 레바논에 거주하고 있다.

 

<LUCAS MAGAZINE WRITER - 아름답고 자유로운 작가가 있는 곳>
작가 : 요르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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