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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에는 언제쯤 백향목 향기가 뒤덮일 수 있는가

국제 & 사회 이야기/국제 사회 문제

by Aaron martion lucas 2019. 9. 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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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기도

솔로몬 성전의 모형도

 <구약성서>를 읽다 보면 솔로몬(아랍식으로는 술레이만) 왕이 왕국의 위엄과 유일신 야훼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으리으리한 규모의 성전을 건축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리고 솔로몬 왕은 성전이 완공된 후 성전 건축을 기념하며 야훼에게 기도를 바친다.

(열왕기상 8:12~53) 그는 야훼에게 왕국과 왕국 백성의 번영을 빌면서 자신들이 야훼에게 충실할 것을 다짐한다.

솔로몬의 기도 중 군주로서 백성들을 걱정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부분과 유대교도가 아닌 이방인들에게도 자비를 베풀 것을 청원하는 부분은 아브라함계 종교인들(유대교도,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 드루즈파)이 아닌 이들이 보더라도 사뭇 감동적이다. 비록 군주로서 솔로몬의 말로가 그리 좋지 못했고, <구약성서>에 솔로몬의 저작 내지는 언행이라고 기록된 것들이 그 진위가 의심되기는 하지만 이 기도에는 자비와 평화를 염원하는 종교인의 영감이 축약되어 있다.

레바논 백향목, 민초의 상징이 되다

이 솔로몬의 궁전을 건축할 때 썼다는 나무가 바로 레바논의 백향목이다. 레바논 백향목은 고대부터 그 향 뿐 아니라 늠름한 자태로도 이름이 높았다. 성체의 높이는 수십 미터에 달하며 가로 둘레 역시 10미터가 넘는다. 백향목은 오랫 동안 민중들에게 곧고 맑은 정신의 상징처럼 간주되었다. 괜히 솔로몬 왕이 성전 건축에 레바논 백향목을 쓴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왕국의 위엄을 이웃나라에 과시하고 국내 질서를 통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레바논 백향목만큼 솔로몬의 의도에 부합하는 상징물은 없었다.

가운데 그려진 나무가 백향목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레바논 백향목은 레바논과 레바논 민중의 상징처럼 되었다. 레바논의 국기 중앙에 있는 나무가 바로 그 백향목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마치 무궁화와 같은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아니, 레바논 민중들에게 백향목은 그보다 더 깊은 의의를 지니고 있다. 오랜 역사를 외세의 지배와 침탈 속에서 살았고, 끝끝내 이를 견디어 낸 (그리고 견디고 있는) 레바논인들은 백향목을 자신들의 정체성의 상징으로 삼았다.

아브라함의 후손들, 긴장과 공존을 오가다

애석하게도 솔로몬의 기도와는 달리, 레바논의 근현대사에서 레바논이 맞이했던 운명은 그리 자비롭지는 못했다. 레바논은 오랫동안 다양한 종교가 공존해온 나라이다. 수니파 이슬람, 시아파 이슬람, 마론파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그리스 가톨릭, 드루즈파 등 아브라함계 종교 커뮤니티가 레바논 땅에 살아왔다. 그 결과 레바논은 다른 아랍/이슬람권 국가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가 나타났다. 1960년대 평화와 평등, 사랑을 부르짖었던 서구의 청년들에게 심원한 영향을 미친 대문호 칼릴 지브란이 바로 레바논의 마론파 가톨릭계 출신이고, 주변의 아랍권 국가들이 수니파 이슬람이 중심인 반면, 레바논은 시아파 이슬람의 비중이 더 높다. 이처럼 가톨릭과 수니파, 시아파 이슬람이 섞여 있게된 것이다.

여기서 뉴스에서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시아파 이슬람과 수니파 이슬람의 차이점은 시아파의 경우 수니파와 마찬가지로 무함마드를 하느님의 예언자로 받아들이며 한 하느님을 믿는 같은 이슬람이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예를 들어 수니파 이슬람이 경전의 권위를 중시하여, 보다 엄격한 계율 준수를 강조하는 반면, 시아파 이슬람은 경전의 권위를 중시하면서도 신비주의 영성의 영향을 받았다. 수니파 이슬람이 예언자, 성인, 위인들의 이미지화를 금기시하는 반면, 시아파는 이미지화에 대해서 다소 너그럽다.

수니파 이슬람이 이슬람의 주류를 이루며 이슬람 문화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기한 특징 때문에 때로는 경직된 모습도 나타난 반면에, 시아파 이슬람은 특유의 신비주의적 영성으로 많은 시인들 및 예술가들, 철학자들을 배출한 이슬람 수피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잘랄앗딘 루미와 더불어 이란의 위대한 시인으로 손꼽히는 피르다우시 역시 시아파 무슬림이다.

이렇게 시아파 무슬림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다양한 아브라함계 종교가 레바논 땅에 공존해왔는데, 역사적으로 이 다양한 종교 세력 커뮤니티들은 각기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서로 긴장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때로는 영향을 주고받았다. 만약에 레바논이 외세의 간섭과 억압이 없이 자연스럽게 근대화 과정을 거쳤다면, 전 레바논을 피와 눈물로 물들인 레바논 내전도, 두 차례에 걸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필자는 '전쟁'이 아닌 '침략'이라고 생각한다)도 없었을 것이다.

레바논의 운명은 내전과 침략을 당하며 짓밟히게 되었다. 

하지만 레바논이 처한 지리 정치학적 특징과 종교적 특징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서방 열강들, 그리고 주변 아랍 국가들은 레바논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평화를 위한 질문

이런 레바논이 최근 다시 국내의 언론에 톱 기사로 올라왔다. 바로 바로 시아파 이슬람 무장 정파이자 정당인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의 대립 때문이다. 이 긴장과 갈등은 언제쯤 끝이 나게 될까? 레바논 땅에 언제쯤 솔로몬의 기도가 실현되고, 곧고 맑은 백향목의 향기가 덮이게 될까?

헤즈볼라 : "이슬람 지하드"라고 불리는 헤즈볼라는 레바논 내 정당조직이자 이란 정보기관의 교전단체이다 (교전단체란 내전이 발생했을 시 외국인 보호를 하기 위해 교전권을 수여 받게되는 조직) 즉, 레바논 정당 중 하나가 이란의 배후 세력인 것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실타래 얽히고 설킨 레바논의 사회정치적 시스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서방 언론과 국내 언론에서 파편적으로 전달되는 레바논 관련 뉴스 및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즉, 나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숲을 보듯이 최근 터져 나오는 레바논 관련 뉴스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부족한 필력을 바탕으로 세 차례에 걸친 글을 써보고자 한다. 다음 칼럼에서는 이미 우수한 민주주의적 토양이 시민 사회에 마련되어 있음에도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레바논의 전근대적인 기형적 시스템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편 글에서는 그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헤즈볼라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이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과는 달리, 헤즈볼라를 단순히 테러 집단으로만 보기 힘든 이유를 열거할 것이고 아울러 반제국주의 운동 집단으로서 헤즈볼라의 한계 역시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 편에서는 오랜 애증의 관계인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난민 사이의 관계를 다루면서, 서방과 이스라엘의 책임 문제를 논해 보고자 한다.

 

<LUCAS MAGAZINE WRITER - 아름답고 자유로운 작가가 있는 곳>
작가 : 요르고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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