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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사랑하고 이별하며 살아갈 소녀

문화 & 예술 이야기/인생 영화 소개

by Aaron martion lucas 2019. 8. 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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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존재. 신은 아니므로 고통을 알며, 먹어야 살 수 있는 인간처럼 음식과 생활을 위한 돈을 필요로 한다. 신과 가까운 생을 살지만, 인간과 다름없는 삶을 사는 그들. 저녁이 노을을 맞이하기 직전의 하늘을 박제당한 듯 그들이 사는 땅은 늘 저물어가는 햇빛에 잠식 당해 있고, 그들은 그 안에서 창가의 틈새를 파고드는 햇빛과 함께 베틀로 천을 짜며 살아간다.

신의 낙원에서 신처럼 살아가지만 감정을 알고 고통도 알기에 공감을 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느끼며 자연의 변모를 무한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지켜볼 수 있는 그들은 완벽하기 그지없어 아득히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행복의 중심을 누리며 사는 듯 보인다. 무한의 시간 동안 젊음을 누리고, 영롱한 햇빛이 드는 오후를 수 없이 보며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에게는 절대적인 의무가 있었다.

사랑하지 말 것.
사랑하는 순간, 고통 속에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라 말한다.
외톨이가 되어버린다고.

이는 극장 애니메이션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에 등장하는 '이별의 일족'의 이야기다.

금발의 머리칼과 새하얀 피부, 그것에 어울리는 하얀 옷만을 입으며 사는 그들은 하나같이 아득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찰나를 사는 인간이 본다면 너무나 매혹적일 만큼. 그래서 인간들 중 추악한 이들은 이별의 일족이 가진 아름다움과 영생의 비밀을 밝혀 차지하기 위해, 세상의 깊은 곳에 자처해 숨은 그들의 땅을 찾아갔다. 불을 질러 그들이 엮은 천을 태우고, 살을 베 죽이기 시작했다.

결국 대부분의 일족이 죽거나 잡혀갔고, 소수만이 그곳을 피해 세상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일족의 한 명인 '마키아'라는 소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인간의 기습으로 인해 폐허가 된 터전을 무사히 벗어난 그녀는 숲을 헤매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떠돌이들이 모여 일군 작은 취락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하지만 그곳도 누군가의 기습으로 인해 자신의 세상처럼 부서지고 죽어있었다. 텐트는 찢겨있고, 그 틈 사이로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한 아이의 울음소리도 그 틈을 함께 비집고 나왔다. 다행히도 한 명의 아기가 살아있던 것이었다.

죽은 어미의 품에서 두 손으로 감싸인 채 울부짖던 아이를 보며 마키아는 함께 동조해 눈물을 흘렸고, 그 속에 아이를 둘 수 없어 데려가기 위해 아이를 어미의 품에서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어미의 굳은 손은 좀처럼 아이를 놔주지 않았다. 뻣뻣해진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내도 다시금 오므라들기를 서 너번. 마키아는 더욱 눈물을 흘렸다. 알 수 없는 모습이었으니. 죽어 식어버린 육체가 여전히 아이를 잡고 놓지 않는 것을 보니.

그것은 마키아가 세상에 나와 처음 목격한 사랑이었다. 바로 어미의 사랑.

영화는 영생 속에서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족의 숙명을 가진 아이가 겪기 시작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도 지독히 맹목적이며 자기희생적이고 슬픈 엄마의 사랑을.

늙지 않는 채 영생을 사는 어미와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는 필멸의 삶을 사는 아들. 그 둘의 일생이 짧은 영화의 러닝 타임 전체를 관통한다. 그리고 이는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지극히 편파적인 사랑의 행보를 보인다. 어미가 된 영생의 소녀가 필멸의 아이를 사랑하며, 세상과 끝없이 부딪히며 여린 몸으로 아이를 지켜나간다. 그리고 아이는 그녀의 사랑을 양분으로 성장하며, 유년 시절을 넘어 소년으로 그리고 성년으로 성장한다.

그녀의 키를 훌쩍 넘어서고, 어느덧 그녀의 얼굴보다도 성숙한 남자의 얼굴이 된다. 어미인 그녀는 여전히 처음 그날의 모습 그대로 그 얼굴과 웃음으로 아이를 변함없이 대하지만, 아이는 성인이 된 뒤 더 이상 그녀를 엄마라 부를 수 없었다. 자신과 다른 시간을 사는 그녀를 자각하게 될수록 혼란스럽고, 어색해질 뿐이었다. 결국 그들은 자연스레 각자의 삶을 나아가기 위해 이별하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변함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라고.

이후 모종의 사건으로 그들의 나라에는 죽음과 싸움이 닥치지만, 종국에 그들은 완성하지 못한 이별이 이어준 우연으로 다시금 만나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마키아는 그의 아들이 임종을 맞이하기 직전에야 다시 재회했다.

아들은 침대 위에서 흰머리 칼과 주름진 얼굴로 마지막 말을 읊조리듯 엄마에게 전하며 눈을 감았다.
"다녀오셨어요"
그녀는 편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낮게 말했다.
"다녀왔어, 열심히 살아주었구나"

그 후 한동안 그녀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사실 영화를 보며 결말을 보지 않아도, 그들이 가진 사정으로 인해 종국에는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끝날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아들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며 아내와 함께 늙어가는 동안, 마키아는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살아갈 운명임을,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살아갈 운명임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끼며 슬프지만 행복했음을 인정하고 평화로운 이별을 맞이할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듯 예상할 수 있던 이야기임에도 코끝을 저리며 가슴을 내려 앉히던 감동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던 이유는, 연인이 아닌 모자의 사랑을 다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동등한 삶을 사는 연인에게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슬픔.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사랑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슬픔이 바로 부모와 자식의 사랑이 아닐까. 부모와 다른 시간을 살며, 부모와 달리 꽃이 지는 것이 아닌 꽃을 피우는 자식은 부모에게 있어 죽는 날까지 가장 젊고 생명력 가득한 영생의 존재일 것이다. 언젠가 자신의 나이가 될 자식들을 보며 점차 나이 들어가는 그들은 마키아처럼 아무런 대가 없이 희생을 선택했다. 사랑이라는 단 두 개의 음절이 가져다준 부모와 자식의 연을 일평생을 걸어 가꾸고 키운 것. 언젠간 이별할 걸 뻔히 알면서도 사랑했으니 행복한 것이라며 부모는 지극히 희생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을 스스로 선택했다.

사랑은 이별을 박제 당했기에 필연적으로 함께 일 수밖에 없다. 결국 모든 인연은 이별을 하고 만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남자와 여자가 연을 맺고, 부모와 자식의 연이 그 속에서 태어난다. 이 영원한 반복 속에서 영화가 보여준 찬란한 이별이 내내 가슴을 떠나지 않았다.

마키아는 아들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이별이 남기는 것이 외톨이가 될 자신만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혼자는 되겠지만 사랑하기 이전에 없었던 ‘추억‘이 함께 일 것이다. 그 인연이 세상에 남아 자신을 살게 할 것이다. 이는 언젠가 부모를 떠나 보낼 우리도 상기해야할 진실이다.

 

<LUCAS MAGAZINE WRITER - 아름답고 자유로운 작가가 있는 곳>
작가 : 전성배
블로그 : https://brunch.co.kr/@137tjdq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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