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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종주의의 기원 (마지막 편) : 미국 중심적 세계화의 허와 실

국제 & 사회 이야기/국제 사회 문제

by Aaron martion lucas 2020. 12. 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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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 전, 남북 아메리카 대륙을 포함하여 수천 개 가량의 비유럽계 언어가 사용되어 온 것으로 추산된다. 각 언어들의 친족 관계도 제각각인 경우가 많아 언어학자들과 인류학자들 및 언어 다양성 운동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얻고 있다. 그러나 유럽계 개척자들의 식민화 이후로 지금까지 아메리카 원주민 언어 구사자들이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특히나 미국의 경우 원주민 언어 소멸 현상이 매우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호주 원주민 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역시도 원주민의 언어는 거의 초토화에 이르렀다.

현재 대다수의 원주민 언어들이 소멸 위기 단계로 접어들고 있거나 이미 소멸된 상태이다. 유럽인들의 본격적인 북미 대륙 개척과 식민화는 라틴아메리카 대륙보다 훨씬 늦게 일어났음에도 원주민 언어 소멸 현상이 미국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스페인어/포르투갈어권으로 분류되는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언어인 케추아어, 아이마라어, 과라니어 등의 화자만 하더라도 각각 수백만 명이 넘으며, 칠레, 과테말라, 볼리비아, 페루 등에서 스페인어와 함께 공식적인 지위가 인정된 동시에 원주민 문화 보존 차원에서 보호받고 있다.

세계 최대의 부국이자 세계화와 자유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해왔으며, 근대적 다민족, 다문화 국가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미국에서 왜 소수민족 언어 소멸 현상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건국의 대표적 신화적 사건인 "보스턴 차 사건" 자유와 평등을 외쳤지만 최근 미국에서 이 신화적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존하는 모든 나라 및 민족 공동체들은 제각기 그 나름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이 신화들은 알게 모르게 구성원들의 역사관과 세계관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화라고 해서 모두 허구라거나 왜곡된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신화는 역사적 사건과 현실에 대한 상징 체계이기도 하다. 더불어 사람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역사적 현실을 바라보고 해석했는지에 대한 주요한 준거틀이 되기도 한다. 근대 국가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번외편에서 다루겠지만,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을 전후하여 벌어진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신화적 베일에 가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역사 속에서 그 신화적 실체를 올바로 파악하는 일이다.

미국은 어떨까? 위에서 언급한 자유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의 미국, 다민족, 다인종 국가로서 미국의 이미지는 어쩌면 근대 국가로서 미국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정립된 신화에 상당 부분 기인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트럼프의 당선과 낙선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적 혼란, 인종, 계층간 갈등 속에서 그 신화적 이미지가 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1830년 "인디언 이주법"의 미명 아래 자행되어진 인디언 강제 이주 과정에서 수많은 인디언들이 죽어나갔다.
평화로워 보이는 인디언 보호구역의 모습, 이보다 교묘하게 인종 청소를 시키는 방법이 또 있을까 싶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중남미 대륙에서 자행한 인종 청소와 식민화가 북미 대륙에서 영국 출신 청교도 및 '개척자들'에 의해 그대로 반복되었다. 다만 북미 대륙에서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대한 인종 청소와 식민화는 보다 체계적이고 교묘하게 일어났다는 차이가 있다.

근대 국가로서 미국의 건국과 함께 인디언들은 앵글로 색슨계 청교도들이 중심이 된 주류 사회로부터 밀려났다. 수많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인디언 보호 구역'의 명목으로 설정된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고 격리되다시피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디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후로도 미국 사회에서 인디언들에게 허락된 생활 반경은 더욱 줄어들었다. 백인 개척자들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인디언 전사의 유골이 박람회나 박물관에서 전시되는가 하면, 아예 살아있는 인디언들의 생활상을 전시품 마냥 전시해놓기도 했다. 미국 사회에서 민권 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 이후에도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유골이 연구 및 실험용으로 쓰이는 일이 버젓이 일어났다.

미군에게 피에 물든 악귀로 악명을 떨친 "제로니모" 추장의(맨 오른쪽) 항복 당시 모습.
미국은 그를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자랑하고 전시했다. 그의 전사로써의 영광은 그렇게 짓밟혔다.

미국 역사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존재는 라틴아메리카에서보다 훨씬 철저하게 지워졌다. 보통 미국의 역사 서술은 대대로 그 땅에서 살아왔던 원주민들이 아니라 영국 출신 청교도들과 근대적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된 개척과 미합중국 건국에서 출발한다. 이는 마야 문자가 해독되고, 다양한 부족들이 존재했던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와 대조된다.

미국 사회는 여러 시민 운동과 민권 운동, 갈등과 혼란을 거친 이후 현대에 들어 각종 차별금지법안이 제정되고 있으며, 다른 어떤 서구권 국가들보다도 인종 차별에 대한 금기 풍조가 자리 잡았다.그럼에도 인종간 갈등과 차별이 사회 불안 요소로 남아있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앵글로 색슨계 개척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근대성의 어두운 이면이 청산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미국 건국 대통령 4인의 '러쉬모어'산 조각상(아래)이 위치한 '블랙힐스'에는 '리틀 빅 혼' 전투의 용장 '크레이지 호스'의 조각상(위)이 함께 있다.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지금의 미국을 만든 대통령 4인의 조각이 '러쉬모어'산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러쉬모어 산이 위치한 지역 '블랙힐스'는 수유족 인디언 부족의 땅으로 '리틀 빅 혼' 전투에서 앵글로 색슨족과 인디언이 치열하게 전투를 펼친 곳으로 인디언들의 피가 흐른 땅에 그들 대통령의 얼굴을 박아 넣은 셈,

아울러 크레이지 호스의 조각상 건축은 각종 외압으로 인해 100년이 가까운 지금까지 완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자유'와 '평등'인가?

현대 미국의 패권주의와 일방주의를 관통하는 세계화와 다민족, 다인종성의 코드는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땅을 살아갔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인종 청소가 이루어진 그 빈자리에서 앵글로 색슨계 개척자들이 근대 국가를 건국한 이후에 나타난 것이다. 오늘날 미국이 지향하는 탈민족주의와 세계화도 미국 중심적 세계관과 패권주의에 대한 정당화의 기제이다. 이렇게 본다면 근대적 다민족, 다인종 국가 미국에서 원주민들의 언어가 소멸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사회의 계층 구조를 여전히 백인, 흑인, 아시아인, 인디언이라는 다소 도식적인 인종 구분을 통해 파악하는 현실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시리즈 중 2편 에서도 언급한 사실이지만 상술한 인종간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애매하다. 아프리카계와 아메리카 인디언들 사이의 통혼과 상호 교류 속에서 나타난 '흑인 인디언'들이 있는가 하면, 아시아계 중에서도 부모나 선조 중 백인들 사이의 통혼을 통해 나타난 집단도 있다. 또 같은 '백인' 집단에 속하지만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미국 개척사와 근대사를 통틀어 백인 사회 내에서 종교적, 문화적 이유로 차별과 소외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피부색에 따른 도식적인 인종 구분법은 기실 상당 부분은 근대 미국 주류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의 산물이다. 마치 근대 서구의 식민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국가적,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라 아프리카 대륙을 분할한 것처럼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같은 편견은 백인 우월주의 집단이나 반동주의자들 뿐 아니라, 스스로 인종차별 반대를 표방하거나, 진보주의를 자처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시기 미국의 인종문제는 가장 큰 화두였다.

비록 필자가 전문적인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과거 국내 및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 바티칸, 일본의 여러 유적지와 유물들을 답사하고 공부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세계 각 문화와 민족 공동체는 보편적인 인류 사회에서 유기체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각 문화 및 민족 공동체가 지닌 특유성은 민중들 사이의 화합을 방해하지 않는다. 비록 역사적으로 갈등과 상처가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인류는 창조적인 문화와 예술의 꽃을 피워왔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한국 땅 역시 그 역경의 극복과 창조의 현장이었다. 강대국, 패권국 중심의 세계화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보편적인 세계화가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본 시리즈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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