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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천 : 윤희에게]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feat. 윤희에게 보내는 편지

문화 & 예술 이야기/인생 영화 소개

by Aaron martion lucas 2019. 11. 2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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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고단하다고 느낄 때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내 나이 때 어땠을까?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내 나이 때 어떻게 살았어?"

"일했지"

나의 엄마는 육 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공부는커녕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젊었을 때 일만 해서 연애도 못 하고, 사는 게 바빴다고 했다. 뭔가 있어 보였는데, 더 이상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집안일을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가 나 때문에 엄마의 삶을 살지 못하는 건 아닌지 무서웠고, 미안했다. 엄마가 아닌 자신으로 살았으면 했다. 그래서 <윤희에게>라는 영화가 더 좋았다.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한 채 영화를 관람했기 때문에 보면서 영화 장르를 파악했고, 영화가 첫사랑의 기억을 담백하게 표현해 낸 것에 감탄했다. 직접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현재의 모습으로 서로를 그리워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이 더 애틋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애틋한 첫사랑뿐만 아니라 딸과의 관계, 그리고 화해까지 보여주는 영화였다

우리 엄마는 어떤사람이었는가? 라는 새봄의 궁금증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낯선 곳에서 온 편지를 새봄이 먼저 읽고, 비밀리에 엄마의 첫사랑을 찾아주려 여행을 계획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 초반에 윤희(김희애)는 표정이 없다. 많이 지쳐 보였다. 살아가기 위해 사는 것보다 살아 있으니까 살아지게 되는 것처럼 보였다. 반대로 윤희의 딸 새봄(김소혜)은 쾌활하다. 보통 부모님이 이혼하거나 엄마가 잘 웃지 않으면 움츠려질 수 있는데, 새봄은 그러지 않았다. 아빠에게도 잘 찾아갔고, 남자 친구와도 잘 지냈다. 새봄은 삼촌에게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엄마한테 무슨 일 있니?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묻는 걸 이상하게 생각해했다. 갈수록 윤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하다 표정을 잃어갔는지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게 됐다.

무언가 과거를 감추고 있는 듯한 윤희, 그녀에겐 어떤 비밀이 있었을까?

새봄은 편지를 읽은 뒤 윤희가 궁금해진 걸까. 아니면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증폭되어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던 걸까. 새봄은 윤희에게 왜 사는지 물었다. 그럼 새봄에게 엄마 윤희의 대답은 짧고 간결했다.

자식 때문에 살지.

서울 학교로 입학하면 자주 오지 않을 거란 말에 엄마는 서운해 하지만, 사실 새봄은 엄마가 더 이상 자기를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를 위해 살기를 바랐다. 새봄은 윤희와 아빠가 이혼했을 때 윤희를 선택했다. 엄마가 더 외로워 보였기 때문에. 하지만 살아갈수록 자신이 짐이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새봄이가 하는 대부분의 말은 내가 엄마에게 했던 말과 비슷하다. 엄마는 아빠랑 결혼하기 전에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어떤 꿈이 있었는지 하는. 하지만 늘 말해주지 않았다. 먼 기억이라 기억나지 않는 것인지, 사는 게 바빠서 기억할 시간이 없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렇게 옛 추억을 잊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엄마를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 점에서 새봄의 입장에서 윤희를 보게 됐다. 새봄은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졸업 여행을 가자고 했다. 새봄의 말과 편지 덕분에 윤희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봄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경수(성유빈)도 윤희와 새봄의 여행을 몰래 따라와 다른 숙소에 머물면서 새봄을 만났다. 이 설정이 좋았다. 만약 윤희 얘기만 중심으로 풀어나갔다면 영화가 차갑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 차가움 속에서 새봄과 경수 덕분에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 둘을 보면서 윤희 첫사랑의 기억을 더 떠올리게 할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새봄은 엄마 몰래 쥰이네 고모가 운영하는 커피가게를 찾았고, 쥰이(나카무라 요코)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새봄은 그렇게 윤희 얘기를 하지 않은 채 단지 함께 여행 온 친구와 싸워서 함께 저녁을 먹었으면 좋겠다며 말을 이어갔다. 새봄은 윤희와 쥰이를 만나게 하려고 거짓말한 것이다. 덕분에 윤희와 쥰이는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윤희와 쥰과의 만남에서 이 한단어로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서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쥰 역활을 훌륭하게 소화해준 <나카무라 요코>, 김희애와의 호흡이 너무 인상깊었다.

쥰이는 윤희가 그리울 때마다 편지를 썼다. 하지만 용기 나지 않아 편지를 보내지 못했다. 보내지 못한 편지는 계속 쌓여만 가고, 다시 편지 쓸 땐 처음 쓰는 것처럼 썼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녀가 쓴 편지를 그녀의 고모가 윤희에게 대신 보냈기 때문에 이 둘은 만날 수 있었다. 뒤늦게 쥰이의 편지에 답장하면서 윤희는 그녀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 쥰은 오빠의 소개로 빠르게 결혼했고, 희와의 사랑을 이해받지 못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고.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편지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그리움 때문에 슬프기도 했다. 동성애라는 단어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주변에서 이해받지 못한 사랑 때문에 윤희는 쥰을 홀로 남겨둔채 도망친 자신 스스로에게 벌주며 살아왔지만, 서로에게 잘못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제는 당당하게 살아갈 거라 말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윤희는 지쳐 보이는 표정에서 살아있는 표정으로 변했다. 영화는 윤희가 변하는 단계까지 무리 없이 잔잔하게 보여줬기 때문에 갈수록 몰입하면서 볼 수 있었다

새봄은 여행 중에서도 윤희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조금씩 알아갔다. 가령 새봄이 사용하고 있는 카메라는 윤희에게 대학을 보내주지 못한 미안함에 할머니가 사준 카메라임을 알게 된 것처럼. 말하지 않아서 몰랐던 사실을 윤희 입을 통해 기억해낸다. 엄마에게도 추억과 그리워하는 게 있었다. 드러내지 않아서 몰랐던 것들이 하나 둘 툭하고 꺼내지면서 새봄과 윤희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기분이었다. 새봄이 찍은 윤희는 늘 무표정이었다. 웃는 얼굴이 없었다. 그러다 윤희는 일본 여행을 다녀온 뒤에 잊었던 표정을 되찾았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겨 이력서 쓰고, 소녀처럼 떨려했다. 그리고 식당 앞에서 웃는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너무 담백하고 애틋해서 곱씹을수록 좋은 영화였다. 그리고영화를 멜로 영화라고 소개해서 더욱 좋았다.

 

<루카스 매거진 : 자유로운 작가들이 만드는 독립 잡지>
작가 
: 답답할때 속을 편하게 해주는 매실처럼 마음 따뜻한 글을 쓰는 "매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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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brunch.co.kr/@dahyesong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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